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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욱칼럼] 구호에 맴도는 '정치개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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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개혁을 내세우면서 공동여당이 선거구제 개편에만 초점을 둔 합의안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부랴부랴 합의안을 거둬들이고 땜질작업을 하고 있으나 얼마나 '정치개혁' 이란 이름에 걸맞은 개혁안을 꾸려낼지 궁금하다.

정치개혁을 한다고 하면 가장 핵심과제는 돈 안드는 정치의 실현일 것이다.

지금처럼 큰 돈 들어가는 구조를 뜯어 고치지 않고는 정치자금 조달을 둘러싼 정치부패는 백년하청 (百年河淸) 일 수밖에 없다.

중앙당 축소, 지구당 폐지와 선거부정부패 근절,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가 돈 안드는 정치의 과제다.

이와 함께 정당의 민주화, 집권프리미엄 줄이기도 정치개혁의 또 다른 중심과제다.

정치개혁은 제도의 개혁만으로는 부족하고 의식과 행태의 변화가 병행해야 한다.

예컨대 선거부정.부패를 없애려면 제도와 함께 집권자의 부정.부패척결 의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1880년까지 선거부패가 극심했던 영국이 1883년 강력한 '부패 및 위법행위 방지법' 제정 후 선거부패의 기를 꺾은데 반해 우리가 지난 94년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고도 선거부패 척결에 실패한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정을 주도했던 김영삼 (金泳三) 대통령정부는 막상 15대 총선거에서는 총선승리와 의석수 확보에 집착하다 여당 당선자의 위법행위를 철저히 추급하지 않았고, 형평상 야당 당선자에 대해서도 철저히 법위반을 따질 수 없었다.

그 점은 현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광명을 등, 지난달 구로을.시흥 등의 보궐선거 위법.타락상을 보면 실망을 금하기 어렵다.

정당의 개혁은 돈 안드는 정치와 정당민주화란 두가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미국 등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지구당은 아예 없고, 중앙당도 상설조직이기보다는 선거조직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의원내각제 국가의 경우에도 우리 같은 유급직원이 상근하는 지구당조직보다는 비상임 대의조직이 중심이다.

또한 정당의 공직후보 추천제도가 미국식 예선제도나 광범한 대의원단에 의해 결정되는 상향식으로 바뀔 필요도 있다.

그래야 정치인들이 위만 바라보는 행태를 바꿔 국민을 의식하는 정치를 하게 된다.

우리 정치의 큰 폐단이 정당의 사당 (私黨) 적 해바라기성에 기인한 만큼 정당민주화는 정치민주화의 핵심 과제다.

정치권의 관심사인 선거구제 논의는 점점 초점이 빗나가는 것 같다.

돈 안드는 정치란 기준에서 보면 여권의 중선거구안은 별 효과가 없는 제도다.

일본은 중선거구제를 시행하다 소선거구제로 고치면서 돈 드는 선거구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물론 일본도 그 점에서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한 선거구에서 2~4명을 뽑는 중선거구제는 돈을 쓰면 효과가 나기 때문에 오히려 선거구가 큰 만큼 돈이 더 들 수도 있다.

돈 쓰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려면 선거구가 시.도 단위쯤의 대선거구제가 돼야 한다.

또한 중.대선거구제로 지역구의원을 뽑는 경우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맞지 않다.

더구나 대선구제는 그 자체로 비례대표제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따로 전국구비례대표제를 병행할 의미가 없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제 병행이 꼭 필요하다면 ^소선거구 - 권역별비례^소선거구 - 전국구비례^중선거구 - 전국구비례 중에서 택하는 것이 외국의 예나 이론적으로 적합하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병행하는 독일과 일본이 모두 지역구는 소선거구제지 중선거구제가 아닌 이유를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정치개혁을 하려면 헌법11조에 규정된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현행 선거구의 과도한 인구 편차 (偏差) 도 대폭 줄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인구 많은 선거구와 적은 선거구의 인구편차는 4대1이 넘는다.

그만큼 도시사람들의 참정권은 시골 사람들에 비해 크게 저 (低) 평가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선거구의 과도한 인구편차를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위헌 (違憲) 사항으로 판시 (判示) 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특정 선거구와 전선거구 평균인구간의 편차가 상하 25%를 넘지 않아야 하고, 인구이동으로 그 편차가 3분의 1이 넘게 되면 선거구를 다시 획정하도록 선거법에 명문규정을 두고 있다.

정치개혁이라면 여권이나 정치권의 득실 (得失) 차원, 구호차원에서 맴돌아선 안된다.

그동안 문제됐던 정치제도.행태.의식 전반을 개혁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성병욱 본사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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