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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11. 극동문제연구소 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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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금까지의 학문연구를 양적으로 따지면 '북한연구' 가 국내 최대 규모일 거라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통일은 우리의 최대 과제임을 보여주는 징표일 것이다.

북한 연구 분야에서 한발 앞서 탈냉전시대를 이끄는 걸맞는 성과를 내놓는 집단이 있다.

바로 경남대 부설 극동문제연구소 (이하 극동연) .극동연이 주목받는 까닭은 '햇볕정책' 의 이론적 기반을 닦아내고 있는 사회과학자들의 '산실' 이며, 통일지향 시대에 걸맞는 사회과학계의 학문적 지원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 북한 전문가 배출의 메카, 극동연은 한마디로 박재규 경남대 총장 (55) 의 작품이다.

72년 봄 미국서 사회주의 경제학을 연구한 박총장이 태평로 광학빌딩에 작은 사무실을 내고 북한 관련 자료의 공급 기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게 극동연의 외로운 출범. '북한' 이라는 말조차 자유롭지 않던 당시의 처음 이름은 통한 (統韓) 문제연구소였다.

"북한을 반드시 '괴뢰' 라 불러야 할 때였지요. 유난히 북한 연구에 집착하던 저를 많은 친구들이 말렸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이뤄야 할 통일에 대비해 냉전을 벗어난 참신한 시각을 가진 북한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했지요. " 연구소를 설립한 뒤 박총장은 무엇보다 먼저 북한 관련 자료 수집에 주력했다.

북한 체제를 객관적으로 연구할 물리적 토대를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는 오늘날 극동연이 북한연구 전문기관으로 성장할 수 있는 초석이 됐다.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우리 자료실을 일일이 검열하는 등 외부 간섭에 시달려야 했어요. 밤에는 수시로 간첩 잡는 꿈을 꿀 정도였으니까요. " 73년 '극동문제연구소' 로 이름을 바꾸면서 박재규 총장은 소장에 취임, 북한 및 사회주의와 관련해 새로운 연구인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박총장은 학문적 성과만 뚜렷하다면 전력 따위는 문제삼지 않는 입장이었다.

이 대학 심지연 교수가 대표적인 예. 박총장은 70년대 학생운동 출신의 심씨가 구속 경력이 있지만 "정치적인 신념에 의한 실형이 학문 세계의 결격사유가 될 수 없다" 면서 83년 2월 관계기관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구소 겸임교수에 임용했다.

인재를 모으기 위한 극동연의 노력 가운데 하나는 일명 '마그마' 라 불리는 객원연구위원제도. 이념적 편견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해외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한 젊은 사회과학자들에게 조건없이 연구시설을 제공, 학문 교류의 터전을 닦아가는 것. 이같은 인력 확보가 결국은 오늘날 극동연 도약의 밑거름이 됐다.

86년 현재의 삼청동으로 자리를 옮긴 극동연은 특히 89년 10월 서울에서 개최한 '전환기의 세계와 마르크스주의'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 위르겐 쿠진스키.프레드릭 제임슨.이마뉴엘 월러스타인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외국의 마르크시스트 학자들을 초청, 학계를 놀라게 했다.

이처럼 축적되는 북한관련 연구 성과를 담아내기 위해 극동연은 77년 영문 학술지 'Asian Perspective' 를 창간했다.

처음에 반년간지로 시작, 극동아시아 지역 연구 성과를 담아왔는데 올 초 계간지로 바꾸어 통권 46호를 냈다.

주요 편집자로는 북한문제 전문가인 조영환 전 미국 아리조나주립대 교수 (작고).이만우 미 밀러즈빌 주립대 교수.김주봉 미의회도서관 한국담당관장.이정복 서울대 교수 등이 거쳐갔다.

"초기엔 국내외 저명 학자들의 논문을 담아내기 위해 애썼지만 지금은 논문을 싣기 위해 로비를 해올 정도" 라며 현재 편집을 맡고 있는 이수훈 극동연 국제실장은 자부심을 내보인다.

이 학술지는 96년 이후 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사회과학분야 최우수 국제학술지로 선정돼 지원금을 받고 있다.

이밖에 '한국과 국제정치' '동북아 연구' 등의 학술지를 출간하는 극동연은 연구소 자료회원제도를 운영, 개인과 연구소 등 관계자에게 학문적 성과를 전하고 있다.

현재 회원은 1천여명에 이른다.

극동연은 이같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지난 해 북한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북한대학원' 을 설립했다.

개원초부터 학계의 관심을 모았던 북한대학원에는 대학교수를 비롯해 국방부.문화부 전문가, 대북투자자, 기업인, 변호사 등 내로라 하는 각 분야 전문가 60여명이 석사과정에 등록, 관계자들도 놀라게 했다.

북한대학원은 교수에 의한 일방적 강의를 지양하고 세미나.워크숍을 통해 학생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전임 교수 외에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한배호 (전 세종연구소장).서대숙 (미 하와이대 교수).조명철 (전 김일성대 교수).미하일 노쏘프 (러 미.캐나다연구소 부소장) 씨 등을 초빙교수로 위촉했다.

북한대학원과 함께 북한연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되는 것이 바로 지난 해말 창간호를 낸 새 학술지 '현대북한연구' .기존의 정치.군사 중심에서 문화.경제.사회 전반으로 확장해 학계의 다양한 방법론을 적용, 80년대 이후 새롭게 축적된 북한에 대한 실증적 연구 성과를 수용하고 있다.

북한대학원 겸임인 최완규 교수가 편집을 맡고 심지연.류길재 교수와 극동연의 윤대규 부소장.함택영 연구실장.이수훈 국제실장 등이 참여해 연구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다음달 중 출간될 제2호에서는 북한정권 형성과정의 각 분야별 상황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 30년 가까이 북한에 대한 외곬 연구기관으로 성장해 온 극동연을 통해 한국 사회과학계로 뻗어나간 학자들은 벌써 1백명을 넘어선다.

현 정부의 정책 기관에 참여한 송영선 (국방연구원).박종철 (민족통일연구원).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전웅 (국가정보연수원) 씨 등은 극동연의 학문적 성과가 햇볕정책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사들. 이밖에도 95년부터 열리는 연4회 이상의 통일전략 포럼 등 극동연의 각종 연구활동은 햇볕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극동연은 북한전문가 양성기관인 '북한대학원' 까지 본격적으로 출범시킴으로써 연구와 교육기능을 함께 갖춘 대표적인 북한 전문기관으로 도약하고 있다.

고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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