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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5년생이 인터넷에 '입자물리 연구소' 열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소년 물리학자가 탄생하는 것인가. 초등학교 5년생이 입자 (粒子) 물리학 분야에서 대학생 이상의 실력을 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간혹 어린이 수학 영재가 등장하긴 했지만 물리학 분야에서 어린이 영재가 등장하기는 국내에서는 드문 일. 화제의 주인공은 인천 청학초등교 고병학 (高秉鶴.11) 군. 高군은 최근 인터넷 상에 '가상 입자물리연구소' (galaxy.channeli.net/quark2) 를 개설했다.

어린이 다운 자기소개와 함께 '원자의 등장' , '초끈이론' 등 예닐곱개 코너가 마련돼있다.

'자료실' 에는 봐준데 감사하며 보너스로 준다는 게임파일도 들어있다. 이 홈페이지는 집에 컴퓨터를 들여온지 4개월만에 요령이 적힌 책을 참조해 스스로 완성한 것. "다른 사람들에게도 입자물리학의 세계를 알리고 싶었어요. 우주…, 음 세상의 끝, 뭐 이런 것들이 재미있으니까요. " 高군이 물리학에 본격 입문한 것은 1년여 전. 이모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본 '소립자의 세계' 라는 책에 빠져들면서부터다.

이후 '상대성 이론' 은 물론 최근에는 레더만 등이 지은 '쿼크에서 코스모스까지' 를 독파하는 등 수십 권의 전공서적을 팠다.

실력을 떠볼 겸 해 쿼크가 뭐냐고 묻자 "원자에는 원자핵이 있는데요. 원자핵을 이루는 기본이 핵자구요. 핵자는 다시 6개의 쿼크로…톱쿼크가 가장 무겁고 업쿼크가 가벼운데…" 하며 말투는 어눌하지만 설명에는 막힘이 없다.

高군의 입자물리 지식은 달달 외운 것이 아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란다.

"그래도 책을 읽다보면 막히는 구석이 있을 텐데" 하고 묻자 그럴 땐 앞으로 되돌아가 읽으면 대개 해결된단다.

모르는 수식이 나올 땐 중등용 수학교과서를 참고했다. "아주 어려운 수식은 모르지만 삼각비나 제곱근 정도는 혼자서 이해할 수 있었다" 고. 그렇지만 2.3차 방정식은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한 상태.

아버지 고영수 (高永洙.38.자영업) 씨는 "먹고 살기 바빠 애가 뭐하는지도 잘 모른다" 며 "어렸을 때부터 귀찮을 정도로 질문이 많은 아이" 라고 말했다.

차분하면서도 뭐든지 한번 달라붙었다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는 것. 얼마전부터 컴퓨터학원에 보내기 시작한 것 외에 따로 과외를 시켜본 적도 없다.

高씨 부부는 집 근처에서 두 곳의 당구장을 운영 중. 이 때문에 새벽 서너시가 돼서야 귀가한다.

"아이가 집에 혼자 남아 무료한 시간을 물리학 책을 보며 지낸 것 같다" 고 이들은 짐작할 뿐이다.

홈페이지에 들어있는 高군의 입자물리 지식은 거의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의 고병원 (高秉元) 교수는 "힉스입자나 초끈이론 등 대학생들조차 잘 모르는 것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高군의 꿈은 천체 혹은 입자물리학자가 되는 것. 담임 백기준 (白基俊.48) 교사는 "과학.수학을 다소 잘하지만 전체적으로 온순하고 평범한 인상을 주는 아이" 라고 말했다.

머릿속은 우주로 꽉 차있다는 高군. 요즘에는 인터넷 사이트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기초과학지식 습득에 여념이 없다.

[혹시 내 아이도?]

'우리 아이가 혹시 과학 영재는 아닐까. ' 부모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한번쯤 해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떡' 과는 달리 '자식' 은 내 아이가 커보인다. 자식을 과학 영재라고 여긴 부모 중 10명에 1~2명은 옳은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과학 영재는 아이 1백 명 중 1~3명 정도라는 학설이 우세했지만 최근 들어 영재로 여기는 범위가 늘어났다.

한국과학기술원 (KAIST) 과학영재교육센터 이군현 (李君賢) 소장은 "과학분야에 독특한 능력이 상위 15%내에 들면 영재로 볼 수 있다" 고 말했다. 독특한 능력이란 생각하는 방법과 깊이가 남다른 것. 그저 억지로 공부하게 하거나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이 풍부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李소장은 "지능지수와 특정분야의 영재와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게 요즘 학자들의 대체적인 견해" 라고 소개했다. 이는 학교 성적이 평범해도 얼마든지 과학 영재에 들 수 있다는 말.

그러나 과학 영재 판별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초등학생의 경우 지능검사처럼 영재판별 검사법이 그런대로 유효하지만 중.고생으로 올라갈수록 단순한 판별법이 잘 듣지 않는다.

87년부터 영재센터를 운영,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갖고있는 KAIST는 전문가들의 면접을 중요한 판정 잣대로 삼는다. 수학.물리.화학 등 전문 교수가 직접 면담과 시험 등을 통해 영재성을 평가하는 것. 이 곳에서는 매년 전국의 중.고교생 수천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http://gifted.kaist.ac.kr:7777/html/main2.html) 을 통한 영재교육법 등을 개발, 영재를 선발 교육해오고 있다.

또 수학.과학.정보 등 3개 분야에 걸쳐 3차의 선발과정을 통과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학기간 등에 국제과학올림피아드와 유사한 교육도 실시한다.

과학 영재에 대한 사회의 높은 관심과는 달리 KAIST를 제외하고는 지난해야 전국 규모의 영재교육체계가 마련됐다. 과기부 주도로 한국과학재단이 자금을 지원하는 전국과학영재교육센터가 권역별로 나뉘어 9개 대학에 설치된 것.

그러나 초창기인 만큼 영재 선발이나 교육방법 등이 아직 체계적이지 못한 실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영재교육 관계자들은 국회에 계류 중인 '영재교육진흥법' 이 통과돼야만 국가차원에서 제대로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일찍부터 과학 영재를 길러내기 시작한 미국은 웨스팅하우스의 영재지원프로그램 하나에서만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또 뉴욕 브롱스 과학고에서도 같은 숫자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

과학 영재는 사회 구성원 여럿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 교육에 역점을 둬야 할 때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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