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떼고 이런 생각
두 발 떼고 저런 생각
세 발, 네 발… 이저리 헤매다가 밤 깊어
생각 깊어보일 듯 보일 듯 희미히 오시네,
처지다 늘어지다 아예 꺾인 목,
꺼진 들썩이는 어깻죽지, 휘청이는 바짓가랑이,
달아진 신발창 밑에 꼬옥꼬옥 숨겨둔
아버지라는 이름의 외로움을
한 번쯤이라도 힐끔 훔쳐본 적 있나요?
희망은 가난한 자, 방황하는 자의 빵이라고
새끼 둔 소 길마 벗을 날 없다고
지네발에 신발 신기듯 식솔들 돌보노라
가문날 웅덩이물처럼 자꾸만 자꾸만 졸아드는 사람,
실직에 가슴 덜커덩 무너지고
안스런 아내 눈빛에 마음 쓰리고
철없는 자식들 낯빛에 겁나는 사람
한 잔 술값에도 눈치 보는 사람
이 세상 떠멜 양 어깨 빛나던 적 있었지요
날 선 파도 품을 양 요동치던 가슴인 적 있었지요
커서 울아빠처럼 될거야,
커서 울아빠처럼 살거야, 이런 소리 들은 적 있었지요
희망 절망 기쁨 설움
신명 고뇌 취업 실업
멍에처럼 가득 지고 절뚝이는 사람, 달과 별과 함께 걸어
어둠 깊어진 골목, 머뭇거리는 발걸음
초인종 앞에서 떨리는 손, 저 손
아, 저 모습보다 더 캄캄한 어둠 없어요
아, 저 처진, 늘어진, 꺾인 목덜미보다
더 깊은 외로움 없어요
그리하여
아버지여, 아버지여, 아버지여
당신보다 더 찬란한 빛 없어요
당신보다 더 진한 물감 없어요
당신보다 더 소중한 모습 없어요
이 세상 이 세상 이 세상
당신의 빛으로, 물감으로, 모습으로 색칠하세요
우리 우리 우리 우리 아버지 아버지…
[조태일은…]
▶64년 시 '아침선박' 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95년 만해문학상 수상
▶시집 '자유가 시인더러' 외
▶현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