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완의 록&論] 팻보이 슬림의 '유브 컴 어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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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빅비트' 라는 테크노 장르가 작년 한햇동안 유행되도록 한 장본인, 팻보이 슬림의 히트작 '유브 컴 어 롱 웨이 베이비' 가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발매되었다.

빅비트라는 장르가 인기를 끈 이유는 아마도 이 장르가 테크노의 혁신성과 복고적인 느낌을 결합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빅비트는 옛날의 사운드를 즐겨 샘플링의 재료로 삼는데, 그에 따라 한 장르 안에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시간의 중첩이라는 묘한 장르적 특성이 생기는 것이다. 빅비트의 사운드는 옛날의 사운드로 추억을 자극하기도 하고, 혁신적인 노이즈로 신선함을 주기도 한다.

추억은 따뜻하고 혁신은 차갑다. 빅비트는 따뜻함과 차가움을 교차시키는 재미난 테크노 장르이다.

팻보이 슬림이라는 인물 역시 흥미롭다. 그는 이미 '프릭 파워' 라는 유명한 밴드를 이끌던 사람이고, '마이티 덥 캐츠' 등의 여러 프로젝트 그룹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그의 본명은 노먼 쿡. 그가 하던 밴드들의 음악적 성향도 매우 다양하다. 프릭 파워는 애시드 재즈 밴드이고, 그 전에는 펑크 밴드도 했었다. 그는 한 사람이지만, 음악을 보면 그는 여러 사람이기도 하다. 자기 자신을 여려 겹으로 두고 있으니 자연 이름도 여러 개. 물론 그 '여러 겹' 을 아우르는 하나의 방향성은 있다.

그건 다름 아닌 일상에 대한 애착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적인 사운드를 어떻게 음악적으로 정리하느냐이다.

이번 앨범 역시 그 대목을 잘 들려준다. 옛날 우리의 추억을 자극하던 그 멜로디들, 그것들은 늘 우리 곁에 아무렇지도 않게 있던 것들 아닌가. 그 일상적 소리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재발견하는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테크노라는 혁신적 장르이다. 이걸 '팻보이의 역설' 이라 불러도 될까.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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