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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살리려면 증시부터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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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렸다. 미국은 금리를 올리는 데 우리는 왜 내리느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은 금리를 올려 물가상승을 억제하면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고, 우리는 금리를 내려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키고 꺼져가는 성장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금리를 내리면 빚진 사람은 다소간 여유를 찾겠지만 이자수입을 바라고 사는 사람에겐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물가상승을 뺀 실질금리는 이미 마이너스다. 은행예금 일부가 이탈할 가능성이 크지만 막상 갈 데가 없다. 주택시장이 침체로 돌아선 상황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든지 단기성 자금으로 떠돌 것이 뻔하고 따라서 금융시장은 그만큼 불안정해질 것이다.

이 돈을 주식시장으로 유인하자. 원래 금리가 떨어질수록 돋보이는 것이 주식이다. 경기가 나쁜 것은 사실이지만 잘 나가는 기업도 많다. 지금이 내수가 최악이라면 앞으로는 좋아질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시가 대비 5~6% 배당을 하는 기업도 흔하다. 실제로 우리가 이런저런 핑계로 주식을 외면하는 사이 외국인은 마구 주워 담고 있다.

지난해 국내 주식 15조원어치를 꿀꺽한 외국인은 올해도 벌써 12조원어치를 순매수했다. 미국 금리가 올라도 원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내 정치판이 어수선해도 흔들림이 없다. "왜 사냐"고 물으면 "왜 안 사냐"고 되묻는다. 주가가 폭락한 5월 이후에도 자그마치 2조5000억원어치를 사들인 외국인에겐 우리가 이상하게 비칠 뿐이다.

이러다 보니 우량 기업들이 줄줄이 외국인 손에 넘어가고 있다. 전체 외국인 지분율이 40%를 넘어섰고 이들 외국인에게 연 수백억, 수천억원에 이르는 배당을 지급하는 기업도 한둘이 아니다. SK는 지난 봄 외국계 펀드와 힘겨운 지분 싸움을 치러야 했다.

물론 애국심에 호소한다고 투자자들이 마음을 바꾸진 않을 것이다. 뭔가 손에 잡히는 유인이 필요하다. 세금 혜택을 주자는 것이다. 그것도 이자나 배당에 대한 비과세로는 부족하고 두 해 전 비과세 장기증권저축에 대해 한시적으로 부여했던 세액공제와 같은 것이라야 한다.

여기서 형평성과 세수(稅收)를 문제삼는 것은 단견에 불과하다. 일부 극히 잘사는 사람보다는 광범한 중간계층이 실질적 혜택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몇년간 면세점(免稅點)이 올라간 것이나 최근 부유세를 신설하려는 움직임을 감안한다면 형평성은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기억해야 할 것은 주식시장이 우리 경제의 최대 강점인 역동성을 대변한다는 점이다. 주식시장이 살아나면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기업 투자가 늘어나 궁극적으로 감면해준 금액 이상의 세수 증대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해외 DR 발행이 연기되거나 형편 없는 수준에서 공모가격이 결정된 예가 있고 국내에서도 상장.등록심사를 통과한 기업들이 시장침체로 공모일정을 못 잡고 있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구체적인 상품을 여기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가령 최소한 3년을 묻어두는 주식형펀드에 한해 세액공제(또는 소득공제)를 부여하는 형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증시 발전의 화두가 되다시피 한 '장기 투자'와 '간접 투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자는 것이다. 은행.증권도 수익증권을 판매하거나 자회사를 통해 자산운용에 참여할 수 있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우량 기업에 장기 분산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들을 모으는 것은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의 핵심으로 잡혀 있는 자산운용업의 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권성철 한국투신운용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