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1위 대만 野지도자 '총통불출마'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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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대만 정계가 '신선한 충격' 에 휩싸였다.

야당인 민진당 (民進黨) 의 천수이볜 (陳水扁) 고문이 '총통 불출마 선언' 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陳고문은 '야당 총통후보 중 국민 인기도 1위' 를 유지해온 강력한 총통후보다.

대신 그는 당내 경쟁자인 쉬신량 (許信良) 전주석의 총통 당선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당이 쪼개지는 것을 막고, 성공적인 정권 교체를 위해서' 라는 게 이유다.

◇ 폭탄선언 = 陳고문이 28일 당중앙상임위원회에서 "許전주석 동지가 탈당을 선언했다.

이대로 두면 우리 당은 갈가리 쪼개지고 만다.

이렇게 되면 정권교체도 물거품이 된다.

우리 모두 許동지가 내년 총통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그를 중심으로 굳게 뭉치자" 고 호소했다.

陳고문은 이어 자신의 후원조직인 '볜 (扁) 의 친구들 모임 (阿扁之友會)' 의 발족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놀란 상임위원들이 "내년 총통선거에 안나간다는 얘기냐" 고 되묻자 "당을 구하기 위해 (불출마를) 결심할 작정" 이라고 陳고문은 대답했다.

결국 陳고문의 발언은 사실상의 불출마선언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상임위는 일순 숙연한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 許전주석 진영의 고민 = 당초 許전주석이 탈당을 결심한 것은 당내 '4년규정 (四年條款)' 을 둘러싼 파벌간 마찰 때문. '4년규정' 이란 '당원은 4년내에 총통.부총통.성장.직할시장 중 한 직책에만 출마할 수 있다' 는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지난해 타이베이 (臺北) 직할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陳고문은 내년 총통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당연히 陳고문 지지파들이 이 규정의 철폐를 추진했고, 이에 반발한 許전주석이 탈당이라는 카드로 맞선 것이다.

그러나 陳고문의 불출마 선언으로 사태는 완전히 반전됐다.

이제는 陳고문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뒤 당에 잔류할 수도, 그렇다고 이를 뿌리치고 탈당을 강행할 수도 없는 곤혹스런 입장에 놓이게 된 셈이다.

◇ 陳고문의 전략 = 陳고문측은 일단 '크게 양보하고 크게 얻자' 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무리하게 '4년규정' 을 뜯어고쳐 총통후보가 되더라도 실익이 적다고 판단했음직하다.

許전주석을 중심으로 한 당내 최대 파벌인 '메이리다오 (美麗島) 계' 가 모두 탈당할 경우 대선은커녕 당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따라서 이번에 양보함으로써 일단 '당을 구한 인물' 이라는 공적을 쌓은 뒤 5년뒤 홀가분하게 총통선거에 임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48세에 불과한 陳고문으로서는 전혀 서두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국민당 반응 = 아직 공식 반응은 없다.

그러나 국민당 인사들은 개인적으론 "살신성인적 결단" 이라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

"국민당이 배워야 할 부분" 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국민당은 쑹추위 (宋楚瑜) 전 대만성장파와 롄잔 (連戰) 부총통파간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복잡한 내부사정을 안고 있다.

홍콩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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