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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들 쌓아둔 돈 48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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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올라간다" 17일 미국 소비자물가와 원유선물가격의 하락으로 뉴욕증시가 상승한 가운데 주식 중개인들이 시세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뉴욕 AP=연합]

상장기업들이 쌓아두고 있는 돈이 올 들어 다시 7조원 이상 불어나 4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돈을 벌어도 투자는 꺼리는 데 따른 현상이다.

18일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12월 결산 525개 상장회사의 지난 6월 말 현재 현금성 자금과 단기금융상품 보유액은 모두 47조9837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7조4083억원(18.3%)이나 증가했다.

현금성 자금은 현금과 3개월 안에 현금화할 수 있는 채권 등으로 24조7779억원에 달했고, 만기 1년 이내인 단기금융상품이 23조2058억원이었다.

현금성 자금은 2002년 말엔 16조7257억원이었는데, 1년반 만에 8조원이 늘어났다. 지난해 말부터 집계되고 있는 단기금융상품은 6개월 만에 4조5423억원이 불어날 정도로 급증하는 추세다. 상장사들의 부채비율은 97.6%까지 떨어졌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주식.채권 시장에서 자금 조달자가 아닌 공급자로서 기능할 정도다. 회사채는 만기가 되는 대로 속속 상환하고 있고, 주식 신규 발행보다는 자사주 매입에 적극적이다.

채권시장에서 물량 품귀 속에 금리가 속속 떨어지고, 주식 발행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기업들이 수출 호조에 힘입어 큰 돈을 벌고 있지만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 시설투자를 꺼리는 바람에 현금 보유가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LG.현대자동차.SK.한진 등 5대 그룹의 현금과 단기성 자금은 23조8865억원으로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기업별로는 삼성전자가 6조3626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자동차(5조2988억원), KT(2조657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기업들이 과도한 현금을 갖고 있으면 결국 외국인 투자자들의 인수합병 표적이 되거나 고배당 압력을 받게 된다"며 "경제 전체로도 기업들이 보유 현금을 활용해 투자에 적극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관계자들은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수도권 규제 등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걸림돌을 제거하는 게 선결 과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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