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정치판 '코미디 전망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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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백여차례 TV에 출연해 일반에도 널리 알려진 고승덕 (42) 변호사가 지난 1일 국민회의 정균환 사무총장을 방문했다.

6.3 재선거 때 서울 송파갑에 공천해달라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수석졸업,△△중학교 수석졸업,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외무고시 차석합격, 행정고시 수석합격,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등이 적힌 이력서도 제출했다.

경력도 경력이려니와 그가 박태준 자민련 총재의 둘째 사위라는 점 때문에 장안에 화제가 됐다.

그의 공천신청 사실을 보고받은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보내 공천에 앞서 '몇가지 정리' 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高씨가 국민회의 공천이 여의치 않자 "혈연이나 지연.학연의 고리를 끊겠다" 는 명분으로 한나라당을 노크, 전격적으로 공천을 받아 또한번 화제가 됐다.

그런데 다시 이틀만에 장인을 만나 출마포기를 공표하면서 오늘의 '고승덕 정국' 을 만들어 냈다.

한나라당은 "강제납치돼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사퇴를 강요당한 것" 으로 규정하면서 국회일정 중단 및 선거 보이콧까지 검토하고 있다.

당사자격인 자민련은 가족문제임을 들어 정치쟁점으로 번지는 것을 피하려는 표정이다.

국민회의는 "남의 집 사위를 밤중에 보쌈해 가는 것은 젊은 피 수혈이 아니다" "더 이상의 억지는 한나라당을 추하게 만든다" 고 코웃음쳤다.

물론 정치판 전체를 코미디로 만든 데 대한 가장 큰 책임은 高씨 본인에게 있다.

그는 자민련 총재의 사위로서 국민회의에 공천신청을 했다가 다시 한나라당 공천을 받는 등 여야 3당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당이나 소신.이념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서는 과정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식의 그의 태도는 "나이가 젊다고 다 젊은 피는 아님" 을 입증해준다.

그는 후보사퇴 발표를 공천주체인 한나라당에서가 아니라 자민련에서 하는 무책임한 행태도 보였다.

한 개인의 정치적 야망에 난리법석을 떠는 정치권의 모습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일에 여야의 수뇌부가 나서 육박전을 벌이는 행태는 이젠 정말 보기 역겹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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