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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새 노동문화의 계기 삼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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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서울지하철이 8일만에 정상화됐다.

불편을 인내한 시민들, 흔들림 없이 원칙을 지킨 정부, 조건 없는 파업철회를 선언한 노조, 이 모두가 극한대립으로 치달았던 종래 노동문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는 이번 선례를 중시하면서 향후 노동문화가 합의와 협력을 통한 노사 상생 (相生) 의 새로운 질서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이번 파업을 주도했고 노동절 연대파업의 미련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는 민주노총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지난날 투쟁방식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고 거듭나는 변신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불법파업→연대파업→노학연대→정치투쟁으로 이어지는 것이 지금까지 해온 노조 투쟁방식이었다.

이젠 이 방식이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노조 스스로 절감했을 것이다.

불법파업에 대해 정부와 시민이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일종의 사회적 협약처럼 공감대로 뭉쳐졌다.

합법파업이라 해도 경제난 극복이라는 국민적 상위개념에 맞지 않을 때는 여론이 등을 돌린다는 사실도 이번 파업에서 노사 모두가 확인한 셈이다.

달라진 사회.경제환경에 걸맞은 노동문화를 지금부터 새롭게 창출해 내야 한다.

특히 이번에 매우 중요한 선례를 만든 것이 정부와 서울시의 자세다.

불법파업에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겠다는 정부와 사용자측이 원칙을 고수한 것이 사태해결의 중요한 변수가 됐다.

사실 지금껏 정부는 당초엔 '원칙대로' 를 외치다가도 파업이 격화되면 원칙에 맞지 않는 노조측 주장을 슬그머니 받아들여 급한 불을 끄는 식의 타협적 대응을 했기 때문에 노조의 불법투쟁을 조장한 측면도 있었다.

이래선 안 된다.

지킬 선은 반드시 지킨다는 원칙 고수가 새로운 노동문화를 정착시키는 기본 틀임을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바뀌지 않은 잘못된 풍조가 여전히 남아 있다.

왜 노조는 투쟁을 할 때마다 명동성당 아니면 대학을 피신처 또는 투쟁거점으로 삼느냐는 것이다.

심지어 이번에 지하철노조는 지난 권위주의 시절에도 없었던 도서관까지 점거했다.

이젠 노조나 다른 어떤 세력도 더 이상 성당과 대학을 투쟁거점으로 이용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오히려 이런 곳일수록 존중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 성당과 대학은 민주화 투쟁의 거점이었다.

그러나 기업과 단체의 구조조정문제는 민주화 투쟁 대상이 아닌, 기업이나 지하철 경영개선을 위한 노사간 내부 문제다.

더 이상 이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직장 내부 문제라면 작업현장에서 토론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런 잘못된 시위문화를 고쳐나가야 노동운동이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이번 파업사태의 경험에서 노.사.정 각자는 앞으로 새 노동문화의 정착을 위한 귀중한 교훈을 얻고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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