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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공포의 학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은 문명국가 중 이례적으로 총기 보유가 자유로운 나라다.

그만큼 총기사고와 총기를 사용하는 범죄가 많다.

수만 명의 피해자들이 총기사고와 범죄에 희생당하는 가장 큰 이유가 두 가지라는 우스개가 미국 사회에 돈다.

두번째로 큰 이유가 "피해자들 자신이 총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 이고 첫번째로 큰 이유는 "피해자들이 총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불특정다수를 표적으로 하는 사회병리적 범죄현상이 늘어나는 추세를 꼬집는 이야기다.

총기범죄에 둔감해진 미국 사회지만 학교에서의 사건이라면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무방비상태로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에만도 인명피해를 낸 충격적 사건이 네 차례나 일어났다.

열세 살짜리와 열한 살짜리가 여학생들을 '사냥' 해 다섯 명을 죽이는 사건이 3월에 있었고, 5월에는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한 열다섯 살짜리의 집에 가 보니 부모가 모두 살해돼 있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있었다.

겉으로 터진 굵직한 사건들 뒤에는 학교를 황폐하게 만드는 자잘한 일들이 수없이 많다.

졸업식날 죽일 급우들의 '살생부 (殺生簿)' 를 만들어 갖고 있다가 경찰에 적발된 미주리주의 중학생들은 전형적인 경우다.

시애틀에서는 여섯 살짜리가 누구누구를 쏴죽이겠다고 공언을 하는 바람에 학교당국이 하루종일 감시인을 붙여 놓는 조치를 취했다.

대도시에는 금속탐지기를 설치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

리틀턴의 사건이 새로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두 명 이상의 학생이 공모하고 많은 탄약과 폭탄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충동성이 크던 종래의 사건들과도 구별된다.

긴 코트자락을 펄럭이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몇시간 동안 '공포의 세계' 에 군림한 범인들의 모습은 람보 그대로다.

운동부학생들과 함께 유색인종 학생들을 주된 표적으로 삼았다는 목격담이 들린다.

'왕따' 를 당하며 학교생활을 해 온 범인들은 인기있고 자신만만한 운동부 학생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한편 인종적 우월감의 대상인 유색인종 학생들의 '건방진' 태도에 분노를 느껴 온 모양이다.

미국 사회의 눈은 다시 총기규제 문제에 쏠리고 있다.

적어도 또 하나 문명의 흉기인 자동차와 같은 수준으로 등록과 면허를 엄격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도구에 있지 않다.

범인들을 이 지경에 몰고 온 '정신적 폭력' 이 정말로 무서운 것이다.

총기가 미국처럼 흔하지 않은 사회라고 해서 학교폭력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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