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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쓰는 그들, 학생군인외국인 그리고 불륜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여러분 휴대전화 한 대는 가지고 계시지요. 인구가 4800만 명(통계청 2009년 추정)인데 휴대전화 가입자가 4739만 명(7월 말 현재)이라고 하니 국민 대부분이 휴대전화가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자 그럼 공중전화 아시지요. 그것은 없어질 법도 하겠네요. 누가 공중전화를 쓰겠습니까. 손에 전화가 있는데.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직도 곳곳에 공중전화가 15만3000대나 있다고 합니다. 한때 많을 때는 56만 대(1999년)가 있었답니다. 그때만 해도 거리에서는 통화를 하기 위해 공중전화 앞에 늘어선 줄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잔돈이 남은 채 수화기가 전화기 위에 올려져 있으면 왠지 전화를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1인 1휴대전화 시대인 요즘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서울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공중전화 10곳을 찾아봤습니다. 이곳의 공중전화는 대당 한 달 사용량이 7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전국 평균이 대당 2만원이니 거의 35배가 됩니다. 그런 공중전화가 있는 곳을 찾아봤습니다.

서울 목 좋은 10곳은 월매출 70만원
도봉구 방학동 청구아파트 상가에 있는 공중전화(동전·교통카드 겸용). 9일 오후 그곳엔 동전을 한 움큼 손에 쥔 이수민(21·대학생)씨가 있었다. “16년째 이 동네에서 살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이 자리엔 공중전화가 있었다. 어제 휴대전화를 잃어버려 여자친구한테 전화해야 하는데 여기가 생각나서 왔다.” 이씨는 일회용 공중전화 이용객이었다. 그러나 그가 공중전화를 떠올린 것은 아파트가 생긴 91년 이후 줄곧 같은 자리에 공중전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의 통화가 끝난 뒤 이번엔 중년 여성이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섰다. 시장 바구니를 들고 있던 서옥희(51)씨는 “시내는 차려입고 나가기 때문에 휴대전화를 꼭 챙기지만 집 앞은 그냥 나오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휴대전화를 안 들고 나와서 공중전화로 전화한다”고 했다. 이 전화기는 이 단지에서는 유일하게 동전을 쓸 수 있는 공중전화다. 서씨 같은 이용객은 이 전화를 쓸 수밖에 없다. 또 전화부스 바로 옆이 마을버스 정류장이다. 눈에 띄는 익숙한 장소에 있는 공중전화는 그 이후에도 시민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대입구 지하철역에는 공중전화가 3대 있다. 같은 날 저녁 가장 왼쪽에 있는 공중전화기 앞에 최혜진(17·고1)양이 서있었다. 최양은 “학교에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에 수업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여기서 전화를 한다”고 했다. 3대 가운데 최양이 이용하는 왼편의 전화기만 통화량이 70만원이 넘는다. 통화량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이 역의 지하철 이용객이 하루 평균 9만 명으로 다른 역(평균 5만 명)의 두 배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주변에 학교가 많고 직장인의 통행도 잦다. 또 동전과 카드를 모두 쓸 수 있고 3대 중 손이 가장 잘 가는 왼편에 있다는 것도 이용객이 많은 이유 중 하나다. 오른편 끝도 가장자리기는 하지만 카드만 써야 하는 전화기다.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온 토니(21)는 “외국인이라 휴대전화 개통하기가 힘들어 공중전화로 친구한테 연락하고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병무(52·사업)씨는 “사업하다 신용불량자가 돼서 휴대전화 개통을 못 한다. 그래서 공중전화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량진 전철역 건너편에도 공중전화가 3대 있다. 이 중 제일 왼쪽 공중전화만이 동전과 교통카드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나머지 두 개는 카드만 사용이 가능하다. 동전 이용이 가능한 전화기가 매출이 많다. 앞에 있는 6층짜리 학원을 시작으로 인근이 온통 학원이다. 뒤에는 마을버스 2개 노선이 서는 정류장이 있다. 거리에서 유일한 이 전화기는 특히 수험생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민수(30)씨는 “공부에 전념하려고 휴대전화를 정지시켰다”며 집이나 친구한테 연락할 때 여기 공중전화를 사용한다고 했다. 근처 노점에서 김밥을 파는 임순래(45)씨는 “휴대전화가 있긴 한데 요금이 비싸서 잘 안 써요”라며 “집에 애들끼리만 있는데 잘 있나 걱정돼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공중전화는 비밀스러운 용도로도 쓰이고 있었다. 이모(47)씨는 하루에 두세 번 여기 공중전화를 이용한다며 “사실 여자친구가 있는데 휴대전화로 전화하면 아내한테 들킬까봐 공중전화를 쓴다”고 조심스레 밝혔다. 사용량이 많은 10곳 중 위 3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주로 호텔이나 레지던스였고 교도소와 군부대 같은 특수한 곳도 있었다.

공중전화 역사 107년
국내에 공중전화가 처음 선보인 것은 1902년이다. 당시엔 수화기를 들고 교환원을 부른 뒤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려주면 교환원이 원하는 상대를 연결해 줬다. 무인 공중전화기는 62년 산업박람회장에 등장한 ‘체신1호 공중전화기(사진①)’가 시작이다. 5원이던 요금이 77년 10원으로 오를 때까지 시민들의 유용한 통신수단이었다.

‘DDD’라는 제목의 가요가 나올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시내외 자동공중전화기, ‘DDD(Direct Distance Dialing) 공중전화기(사진②)’는 83년부터 2002년까지 사용된 대표적인 공중전화다. 86년에는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MS카드식 공중전화기(사진③)’가 등장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현재 설치된 전화기 중 가장 최신 모델인 ‘교통카드 공중전화기(사진④)’는 일반적인 기능 외에 문자메시지도 보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발전을 거듭하던 공중전화는 99년 56만여 대로 최고점을 찍은 후 그 수가 감소하기 시작해 올해 6월 기준 약 15만3000대가 전국에 설치돼 있다. 1년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전화가 20%가량 되고, 공중전화를 한 대 설치하는 데 100만원에서 250만원까지 비용이 든다. 현재 전화 한 대의 한 달 매출은 전국 평균 2만원에 불과하다. 공중전화 사업은 2000년 이후 계속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공중전화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KT 홍보팀 염우종 과장은 “국민의 편의를 위해 공중전화 서비스를 계속 제공하고 있지만 적자폭이 늘어나 해결책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임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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