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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 '실버상품' 악극으로 활로찾기 확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공연계에서 '장사' 를 하려면 젊은이들을 공략해야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젊은층이 독점하다시피한 공연문화에서 고령층이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

특히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공연물들이 IMF 이후 관객 감소로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와중에서도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공연물은 객석을 가득 메우며 더욱 활기를 띠고 있어 공연관계자들까지도 놀랄 정도다.

문화소비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고령층들을 위한 상품개발은 문화향수의 기회를 넓히겠다는 문화계의 사명감에서 보다는 철저한 상업적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어쨌든 본격 고령화사회가 열릴 21세기에는 '실버문화' 가 최대의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런 현상은 5년여 전부터 극단 가교.신시를 중심으로 본격 공연되기 시작한 악극에서 가장 잘 목격할 수 있다.

악극은 연극계 내부에서 유치하다느니, 왜색이라느니 하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지만 일단 무대에 올렸다 하면 관객확보는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장르로 통한다.

올 초 극단 가교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 '번지없는 주막' 은 공연계 불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1백% 가까운 객석점유율에다 90%이상의 유료관객을 끌어 모았다.

악극 성공을 초반에는 IMF 상황과 맞물린 복고풍 유행 정도로 보아 넘겼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관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실버문화의 정착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판단 하에 뮤지컬 제작사인 티엔에스도 악극 시장에 뛰어들었다. 6월 16일부터 7월 11일까지 호암아트홀에서 열리는 악극 '아리랑' 으로 서울에서만 최소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악극팬들을 끌어 모으겠다는 야심이다.

단순히 향수를 자극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음 세기까지 이어갈 장르로 만들기 위해 연기자의 즉흥연기에 의존하기보다는 탄탄한 대본구성으로 승부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가수가 아니라 최무룡.양택조.전원주.귀순배우 김혜영 등 연기자 중심으로 끌어간다.

티엔에스 설도권 실장은 "실버문화는 이미 젊은층보다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며 "악극을 관람한 고령층의 만족도가 높은데다 아직 악극을 접하지 못한 인구가 많아 앞으로 더욱 가능성이 크다" 고 말한다.

현재 국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3백20만으로 전체인구의 6.9%.65세 이상 인구비율이 7%가 넘으면 고령화사회로 분류하는 유엔기준에 따르면 한국도 내년이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다. 이처럼 높은 고령인구 비율로 볼 때 이들을 상대로 한 실버문화 마케팅은 지금보다 더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은 효도상품으로 자식들이 공연티켓을 부모에게 선물하는 선에서 머물고 있지만 경제적 자립능력이 있는 노년층이 늘어나면서 실버문화는 더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리라는 것이 공연기획자들의 전망이다.

악극과 함께 실버문화의 한 유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버라이어티 쇼. 젊은층이 뮤지컬을 즐기는 동안 노인들은 악극을 관람하고 10대가 콘서트를 가면 실버계층은 트로트가수와 입담좋은 코미디언들이 등장하는 쇼를 본다.

어버이날이 들어 있는 5월에만도 지난해 큰 성공을 거두었던 서울뮤지컬컴퍼니의 '그때 그쇼를 아십니까' (4~11일 리틀엔젤스 예술회관)가 다시 무대에 오르고 비슷한 포맷의 '추억의 쇼쇼쇼' 도 공연된다.

또 극단 신화가 최근 무대에 올린 서민극 시리즈 제3편 '해가 지면 달이 뜨고' (6월6일까지 인간소극장) 역시 노인을 중심인물로 내세워 70대 고령층을 젊은이들의 거리인 대학로로 불러내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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