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부터 원화랑서 구본창 근작 사진전 개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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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우리나라에선 아직 '사진 = 필름' 이라는 말이 맞다.

'사진은 카메라만 있으면 누구나 찍는다' 는 일반의 인식에다 '한번 찍으면 계속 인화가 가능하다' 는 점이 더해져 순수미술의 관점에서도 작품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구본창 (46) 씨는 이런 풍토에서 '작가' 로 꼽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다.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독일 함부르크 국립조형미대에서 사진디자인을 전공하고 귀국한 85년부터 수차례의 개인전.그룹전과 사진전문화랑 워크숍9 운영 등을 통해 '사진 = 작품' 이라는 인식을 뿌리내리게 하는데 그의 활약이 두드러졌음은 부인할 수 없다.

최근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스쿨에서 3개월간 초빙강사로 있다 귀국한 그가 17일부터 원화랑 (02 - 514 - 3439)에서 흙.나무.물 세 가지를 건조하게 담은 풍경사진으로 근작전을 갖는다.

여덟번째 개인전이다.

30일까지. 우선 변화가 두드러지게 느껴진다.

'구본창' 하면 사진을 꿰매 이어붙이는 기교적 측면이나 뚜렷한 사물 중심의 이미지 부각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풍경을 스트레이트하게 담은 후 정교한 암실 작업을 통해 흙과 나무와 물에 '표정' 을 불어넣었다.사진이라는 매체만 빌렸지 검은색과 흰색.회색 세 가지 무채색을 써 정밀하게 묘사한 드로잉같은 느낌이 강하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흘러가는 것들, 소멸하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 온갖 풍상 (風霜) 을 거치고 세월의 할큄을 견뎌낸 자연의 모습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그가 집어내고자 하는 그 흔적은 스러져가는 '소멸' 이 아니라 쌓여가는 '연륜' 으로 해석된다.

'흐름에서 파문으로' 라는 전시 제목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그는 "작품 경향이 갑작스럽게 변한 것은 결코 아니다" 고 말한다.

아버지의 죽음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던 '숨' 연작 (95년) , 지난해 '한국현대미술전 - 시간' (삼성미술관)에 출품했던 먼지를 주제로 한 '시간의 그림' 등에서 이미 자연과 같은 근원적 요소에 대한 '되돌아보기' 를 시도해왔다는 얘기다.

여기엔 아쉬움도 따른다.

그가 촘촘하게 주워 담은 세월의 표정은 화석 (化石) 과 같다.

굳어 있다.

패션.영화포스터 등 대중적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을 펼치는 유연함을 바탕으로 한 그의 전작 (前作) 들이 그리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풍경 사진이 주명덕.민병헌 등에게서 이미 익숙한 스타일이라는 것도 새로움을 깎아내리는 한 요소다.

150×100㎝의 큰 작품 15점을 포함, 총 25점의 작품이 걸릴 예정. 그는 오늘부터 열리는 일본 도쿄사진박물관의 사진비엔날레에 참가하며 덴마크 개인전과 유럽에 우리 사진작가를 소개하는 전시를 준비하는 등 올해도 분주한 스케쥴을 예약해두고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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