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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영화판, 징하요(2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22) 액션영화와 결별

앞서 말한대로 나는 70년 전후 3년동안 무려 23편을 연출했다.

이 정도라면 아마 세계영화사에도 유례가 없는 기록일 것이다.

회상컨데 '습작기' 였다는 표현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우리 영화의 경기가 그 어느때보다도 좋았던 시절, 나는 조악한 영화로 세월을 허비했다.

그게 시간을 죽이는 일인지도 모른 채 '영화' 란 문패를 달고 그 공장장 노릇을 한 것이다.

이만희 감독의 '만추' (66년) 나 유현목 감독의 '한' (67년) 등 당시 쟁쟁한 영화들의 틈바구니에서 내 영화는 돈벌이를 빼면 남는게 없는 초라한 행색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이때 내 맘속에서 '이제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 는 각성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는 안되는 법. 막상 환골탈태를 하고 싶어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더욱 괴로운 것은, 주변에서 나를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으로 봐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던가.

당시 터무니없는 남작 (濫作)에 내가 동원된 데는 시대 분위기도 한몫했다.

누구나 쉽게 동요되던 관행들이 판을 치던 시절, 충무로에는 이른바 '가케모치' 라는 게 있었다.

두세작품을 동시에 찍어대는 것을 일컫는 일본식 표현이었다.

웬만한 감독이 아니고서는 이런 관행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두편을 동시에 '레디 고' 를 불러 놓고 양쪽을 오가면서 공산품 찍듯 하는게 영화인줄 알았으니 그 수준이 오죽했으랴. 지금 생각해도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아무튼 세월은 쏜 화살처럼 70년대로 달려갔다.

시계추가 7단위로 옮겨왔어도 바삐 돌아가긴 60년대와 마찬가지였다.

흔히 '뜻을 세운다' 는 이립 (而立) , 즉 서른을 넘긴 나이였지만 전환점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열심히 영화 찍기만 전념하는 게 숙명이거니 했다.

처음으로 자작 시나리오로 '월하의 검' (70년) 을 찍기도 했고, 멜로영화 ( '이슬맞은 백일홍' )에도 빠져봤지만 모두 시시했다.

고정 패턴을 벗어나 보려고 무던히 애쓴 노력의 결과는 고작 절망감, 그것뿐이었다.

"자 이제, 한계상황이구나. " 그래도 이때 만든 영화중 시리즈물 몇편은 건질만한 게 있다.

크게 두종류의 시리즈물이 인기였는데 하나는 '검 (劒)' 자 시리즈였고, 하나는 '명동' 시리즈였다.

장르도 사극과 액션물로 대별됐다.

'검' 자 3부작으로 '뇌검' (69년) , '비검' (70년) , '요검' (71년) 이 매년 한편씩 선을 보였다.

모두 백제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검객들의 쟁투와 사랑을 담았다.

'뇌검' 만 빼고 두 작품은 내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는 데, 따지고 보면 일본영화를 각색한 것에 불과했다.

새로운 작업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보고 싶은 심정으로 매달린 일이었다.

난 그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 (羅生門)' 과 '란 (亂)' 을 보았다.

특히 '난' 에서 보여준 연출 솜씨는 세상에 저런 대가가 또 있을까, 하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하지만 난 구로사와보다는 미조구치 겐지 쪽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나는 구로사와의 영화에 투영된 무인 (武人) 사회의 문화와 그 힘이 싫었다.

대신 같은 무인사회를 다루더라도 미조구치의 '우게츠 이야기 (雨月物語)' 나 '산쇼 다이후 (山淑大夫)' 에 배어있는 절제미에 마음이 동했다.

나는 이런 절제미를 '검' 3부작에서 실험했다.

'명동' 시리즈는 각각 71년과 72년에 나왔다.

'명동 삼국지' 가 1편, '명동 잔혹사' 가 2편 격이었다.

둘 다 뒷골목 사나이들의 세계를 다룬 작품이다.

특히 '명동 잔혹사' 는 당시엔 좀처럼 보기드문 옴니버스 영화로 제작됐는 데, 변장호와 최인현 감독이 각각 1.2화를 맞고 내가 세번째 이야기를 연출했다.

30분 영화의 중편 영화는 처음이었다.

'명동 삼국지' 에 최무룡.김지미가 무보수 출연하는 등 '명동' 시리즈는 훈훈한 미담도 낳았지만 그리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나는 이 시리즈이후 김희라.신성일 주연의 '삼국대협' (72년) 을 끝으로 사극스타일의 액션영화와 결별을 선언했다.

글= 임권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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