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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정, 소녀신궁 곽예지 1점 차 따돌리고 세계양궁 2관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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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한국 양궁이 세계선수권대회 리커브(올림픽 종목)에 걸린 4개의 금메달을 휩쓸었다.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차지한 주현정(오른쪽)이 결승전 상대 곽예지를 포옹하며 다독 이고 있다. 주현정은 곽예지를 113-112로 꺾었다. [울산=연합뉴스]

이창환(27·두산중공업)은 9일 울산 문수국제양궁장에서 열린 제45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리커브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임동현(23·청주시청)을 113-108로 꺾고 우승했다. 여자 결승전에서는 주현정(27·현대모비스)이 곽예지(17·대전체고)를 113-112로 눌렀다.

전날 남녀 단체전을 휩쓴 한국은 2005년 스페인 마드리드 대회 이후 4년 만에 세계선수권대회 리커브 4개 종목을 석권했다. 뒤늦게 꽃을 피운 스타들이 이날 최후의 승자였다.

이창환은 지독한 개인전 징크스를 이번에야 털어냈다. 그는 2006년 이후 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올림픽에 꼬박꼬박 대표로 선발됐다. 단체전 금메달은 점점 쌓여가는데 개인전에서는 늘 16강을 전후해 조기 탈락했다. 별명도 ‘단체전 만땅’이다. 단체전에서 딴 금메달만 갖고 연금 포인트를 다 채웠다는 뜻이다.

이런 반갑지 않은 별명을 가진 이창환은 “새가슴이 아니냐”는 주변의 질책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번 대회 내내 신경성 두통에 시달릴 정도였다. 그는 우승을 확정한 후 “그동안 개인전에서 일찍 떨어지는 바람에 다른 선수들이 쏜 화살을 뽑아주는 역할에 그치곤 했다”며 눈물을 쏟았다. 남몰래 운 적도 많았다는 그는 “이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여자 대표팀의 맏언니 주현정은 실업 선수 생활 9년 동안 번번이 대표팀 선발전에서 낙방해 ‘국내용’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때 첫 태극마크의 꿈을 이룬 주현정은 이번 대회에서 개인전 금메달까지 따냈다.

맏언니지만 경험은 부족해 알게 모르게 후배들 눈치를 봐야했던 주현정은 결승에서 열 살 어린 대표팀 막내 곽예지를 한 점 차로 꺾었다. 마지막 두 발을 침착하게 10점 과녁에 꽂아 넣은 게 승인이었다. 주현정은 지난해 양궁 선수 계동현(현대제철)과 결혼한 ‘궁사 커플’이다.

절치부심한 늦깎이 선수들 앞에서 ‘양궁 신동’으로 각광 받던 임동현과 곽예지는 우승 꿈을 접었다. 2007년 대회 개인전 우승자 임동현은 개인전 2연패에 실패했고, 고교생 곽예지도 1점이 모자라 아쉬움을 삼켰다.

어린 천재가 각광을 받는가 하면 어느 순간 늦깎이 스타들이 스포트라이트에 선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절치부심한 선수들의 눈물 덕분에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국 양궁이 왜 강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여기에 있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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