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총리 주룽지가 미국가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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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6일부터 14일까지 벌어지는 주룽지 (朱鎔基) 중국총리의 미국방문은 양국관계가 상당히 미묘한 시점에서 이뤄져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양국관계는 그동안 인권.스파이문제 등으로 악화일로를 걸어왔고, 해결의 전망도 희박했다.

때문에 한때 朱총리의 방미가 연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朱총리의 방미에 관한 양국의 입장을 조망해 본다.

◇ 중국측 입장 = 朱총리의 이번 방미길에는 몇가지 '지뢰' 들이 놓여 있다.

첫번째는 인권지뢰다.

미국 인권시위는 벌써부터 "주룽지가 도망칠 곳은 없다" 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朱총리 방문지역을 모두 따라다니며 중국정치범 석방, 천안문 (天安門) 사태 사과, 티베트의 독립허용 등을 외칠 예정이다.

스파이문제와 대미 (對美) 무역흑자 문제도 간단치 않다.

또 코소보사태와 관련, 무력철회를 요구하는 중국의 요구를 미국은 아예 무시하고 있다.

그러나 朱총리는 이런 악재들에도 불구하고 미국행을 강행했다.

오히려 "미국인들이 화가 나 있다면 내가 가서 풀어야 되지 않겠느냐" 고 朱총리는 전의를 불태운다.

朱총리의 이같은 변은 냉정한 현실적 판단에 기초한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경제다.

세계무역기구 (WTO)가입에 대한 지지획득은 물론 심상치 않은 중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의 도움 없인 어렵다.

중국은 올해 1~2월 두달 동안 수출이 지난해에 비해 11% 감소했다.

중국의 두번째 무역파트너 미국이 대중국 적자를 이유로 각종 압박을 가해선 경제가 힘들다.

특히 중국경제의 국제시장 의존도가 커지면서 덩달아 미국시장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또 정치적으로도 대만을 전역미사일방위 (TMD) 체제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포기토록 설득하고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의 반발을 누그러뜨려 올해 천안문사태 10주년을 무사히 넘겨야 될 입장이다.

朱총리는 이같은 현실적 필요성들에 기초, 이번 방미중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발전된 중국이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 정말 필요하다는 인상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주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고 있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 미국의 입장 = 미국은 朱총리의 방미를 통해 양국이 그동안 수립한 '건설적 전략 동반자 관계' 를 재확인하면서 구체적 정책현안에 관해선 협력분위기를 다질 예정이다.

한마디로 인권 등 중국과의 현안에 대해 중국을 심하게 압박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WTO 가입문제만 해도 朱총리 방미의 선물보따리로 삼아 다른 현안에 대한 정치적 흥정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

양국간 관심사는 정치.안보분야에서부터 경제.금융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만큼 미.중 양국은 양자관계뿐 아니라 지역현안과 세계적인 문제까지 함께 논의해야 할 관계로 발전했다.

대결이 불가피한 현안도 있지만 미국으로선 중국의 협조가 불가피한 분야도 적지 않다.

미국은 우선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 및 미사일 개발로 분쟁가능성이 커진 서남아시아 지역과 북한의 미사일 개발 억지 등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에 있어 중국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다.

미국은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군사위협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을 국제사회에 편입시키는 과제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4자회담의 순조로운 진척 역시 중국의 지원 없이는 실효를 점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미 정부는 아시아 금융위기 극복에 있어 중국정부가 자국화폐인 위안 (元) 화의 평가절하를 억지하고 있는 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 정부의 대중 (對中) 정책은 21세기 강대국이 될 중국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포용정책을 기조로 삼고 있다.

지난달 23일 미상원 외교위 동아태소위 청문회에 참석한 스탠리 로스 국무부 차관보는 "중국을 세계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정상적 일원으로 만드는 것이 미국의 정책목표" 라고 밝혔다.

워싱턴 =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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