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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도시들] 6. 끝 방갈로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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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방갈로르. 우리에겐 낯선 인도 남중부의 도시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방갈로르는 이미 친숙한 이름이다.

입주해 있는 컴퓨터 관련 업체 수는 1천여개가 넘는다.

전체 산업체 수 2천7백여개 중 약 50% 가량을 하이테크 관련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인도 기업이 아닌 외국 하이테크 업체 2백50여개가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는 유독 인도인이 많다.

새로 창업하는 외국인 중 인도인은 40%나 된다.

이들 인도인들은 대부분 방갈로르를 거쳐간 사람들이다.

방갈로르는 유럽이 수입하는 컴퓨터 관련 소프트웨어의 45%를 수출하고 있다.

방갈로르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떠올리게 되는 단어는 '성장' 과 '개발' 이다.

유리와 철제로 구성된 고층건물이 쑥쑥 올라가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거리는 갖가지 인종의 사람들로 붐빈다.

방문객들은 유럽의 도시와 차이를 못 느낀다.

다만 쪽찐 긴 머리에 차도르를 두른 맨발의 여인들, 줄지은 노점상이 여기가 인도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방갈로르가 과학기술 도시로 자리잡은지는 제법 오래됐다.

인도는 45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마자 방갈로르를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초대 총리 네루는 인도가 선진국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연구했고, 과학기술 도시 조성을 결심했다.

하지만 인도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갈로르는 80년대 초반까지 인도인들만의 평범한 도시에 불과했다.

당시 인도의 기술수준과 가난한 정부의 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선진국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인도공대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유학한 고급 두뇌들이 돌아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이들 유학파들은 방갈로르에 자리잡고 독자적인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후진을 양성했다.

방갈로르는 점차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첫번째 결실은 80년대 중반에 나타났다.

방갈로르의 이름도 없는 조그만 벤처기업이 미국 IBM과 록히드 마틴에 이어 5세대 메모리칩 개발에 성공한 것. 학생들 몇 명이 모여 만든 작은 회사였다.

모토로라는 즉시 이 회사를 통째로 사들였다.

이 무렵부터 외국 회사들의 진출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갈로르의 가장 큰 매력은 싼 임금이었다.

수준급 엔지니어를 1인당 연봉 1만달러 이하로 채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갈로르의 두번째 도약은 90년대 들어서다.

정부가 세제상의 혜택을 부여하고 고급 두뇌가 계속 몰려들면서 기술이 기술을 낳는 최첨단 수준으로 진입한 것이다.

방갈로르가 낳은 대표적 기업은 인포시스다.

직원이 50명밖에 안되는 벤처기업 인포시스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현재 비자. 제록스. 제너럴 일렉트릭.A&T등 다국적기업들이 이용하고 있다.

방갈로르를 세계적 하이테크 산업도시로 자리매김하게 한 계기는 91년에 성공한 밀레니엄버그 방지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당시 세계 어느 나라도 주목하지 않았던 밀레니엄버그 문제에 방갈로르가 앞장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나선 것이다.

방갈로르는 2000년을 목전에 두고 밀레니엄버그가 컴퓨터업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엄청난 호황을 맞고 있다.

98년 한햇동안 밀레니엄버그 관련 산업에서만 약 2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올해에도 약 50% 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방갈로르는 이제 위성기술과 네트워크 산업을 내세워 21세기 하이테크 업계를 리드한다는 전략이다.

특히 위성카메라에 집중하고 있다.

위성카메라는 석유회사나 가스회사 등이 탐사선을 운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다.

지진.홍수 등의 자연재앙에 대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또 하나의 분야가 정보네트워크 기술. 컴퓨터 네트워크 기술은 지난해 세계시장에서 데이터 정보 유통량이 4백% 이상 신장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

저가공세를 펼치고 있는 네트워크 중심의 NC컴퓨터의 아이디어가 나온 곳이 바로 방갈로르다.

재미 벤처기업가로 성공한 스티브 김이 사장으로 있는 컴퓨터네트워크회사 루슨트 (Lucent) 도 이곳에 연구소를 갖고 있다.

방갈로르는 현재 이 분야에서 미국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 지역 엔지니어들의 주장이다.

A&T.IBM.브리티시텔레콤 (BT) 등 네트워크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모두 방갈로르에 연구소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주장이 허풍이 아님을 입증한다.

방갈로르의 성공은 인적자원에 있다.

인도 공과대학을 마친 우수한 두뇌들이 계속 공급되고 있고 이들은 최첨단 기술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인도의 학부모들은 가장 선호하는 자녀의 직업으로 '컴퓨터 프로페셔널' 을 꼽을 정도다.

물론 방갈로르의 앞날이 핑크빛만은 아니다.

인도 정부의 폐쇄경제 운용으로 장기간 계속된 경기침체의 영향이 방갈로르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보조금이 삭감되고 세금혜택도 줄어들어 외국인 투자자의 발길이 저임금정책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또한 방갈로르의 토지가격 상승으로 사무실 임대비용 등이 뛰고 있는 것도 소액 벤처기업의 유치를 어렵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젊은 인재들이 보수가 좋은 미국으로 건너가는 역류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방갈로르가 안고 있는 과제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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