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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에 서서] 군림하는 '아버지시대' 가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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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군림하는 '아버지시대'가고 포용하는 '어머니시대' 온다

어머니는 다정다감하고 극성스러우며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전쟁과 속박으로 얼룩진 우리 역사의 중심에서 아비가 사라진 집을 굳건히 지켜왔다.

팔난봉꾼인 아버지는 여편네가 알아야 할 필요도 없는 가부장으로서의 더 큰 사명 (?) 을 위해 늘 집 밖으로 나돌았다.

험난한 일제시대와 6.25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식을 잃은 아픔을 겪으면서도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 지켜 낸 것은 어머니였다.

요즈음 어머니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관객을 몰고 있는 이윤택 연출, 손숙 주연의 연극 '어머니' 가 그려내는 대강의 사연이다.

내 유년의 저린 추억 속에 자리한 어머니의 모습도 연극 속의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깃불조차 들어오지 않던 고향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나는 5리나 되는 학교 근처의 선생 집에서 과외공부를 했다.

여우가 출몰한다는 느릿재 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칠흑과 같은 어둠이었다.

장정들도 무서워한다는 그 고개 초입에서 등골이 오싹하는 공포감에 떨고 있던 내게 어머니는 어김없이 희미한 등불 하나를 밝히며 나타났다.

한 세계가 그렇게 등불 하나로 구원을 받는 순간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아버지는 더 크고 중차대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민족.근대화.혁명과 같은 감히 여인들에게 맡길 수 없는 일을 하려면 잠을 자둬야 했다.

그리하여 그 시간 어머니에게 모든 걸 맡기고 잠들어 버린 밤. 세계는 어머니가 비추는 아주 작은 등불 아래서 지켜졌다.

그것은 남성들이 거창한 이념으로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래로 아비의 사상 아래 홀대받던 우리의 어머니들이 변함없이 지켜온 불멸의 가치였다.

지난 한 세기 우리 아비들의 자리는 끊임없는 영욕을 거듭하며 부침해왔다.

전쟁은 부권사회가 필수적으로 양산해 내는 권위주의의 극단적 산물이다.

여성을 억누르고 약자를 짓밟아서라도 세상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었던 아비들은 과장된 허위의식 속에 감추어진 자신의 진정한 존재를 똑바로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두려움의 빗나간 돌출구가 전쟁.학살.폭동.혁명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인간은 불행했고 근대사는 피로 얼룩졌다.

그러나 사실 더욱 불행하고 가어린 것은 우리 아비들의 존재였다.

부권사회에서 스스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받고자 했던 아비들은 심신이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사내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정의를 목놓아 부르짖었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윤리.질서.도덕.규범도 이의 산물이다.

하지만 인류의 새벽에는 어머니들의 세상이 있었다.

모계사회라고 불리는 그 시대에 어미들은 권력을 부여받았지만 남성을 소유하고 지배하기를 거부했다.

모성 (母性) 은 수평과 개방.분산의 가치를 존중했다.

관용과 분배의 원칙이 있었으므로 그 시대가 원시공산사회라고 불린 것은 당연했다.

지난 한 세기는 아비들이 그 옛날 어머니들로부터 찬탈해간 권력의 마지막 시험장이었다.

허장성세로 가득찼던 가부장 권력의 상실은 역설적으로 아비사상의 시효소멸론을 주장할 시기가 됐음을 설명해 준다.

수직과 폐쇄와 독선으로 얼룩진 부성 (父性) 의 가치가 모성의 가치와 만나 변증법적 승화로 이어지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해 준다.

이것은 세상 모든 아비들에게도 불행의 종말을 알리는 구원의 소리다.

가부장 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아비사상이 폐기되고 평등과 관용의 어미사상이 발원되는 순간 진정한 의미의 부권도 다시 존중될 것이다.

그리하여 다가올 새천년은 아비 홀로 무책임하게 잠든 밤을 등불 하나로 지켜낸 어머니들이 정면에 나서는 시대가 되리라.

홍사종 극작가.정동극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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