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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감성으로 할리우드 애니 잡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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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린 다로 감독은 “일본 애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아시아만의 문화를 담은 작품은 드물다”며 “신작 ‘폴, 엄마가 간다’는 ‘해리 포터’도 ‘반지의 제왕’도 아닌 아시아적 판타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68세의 거장은 여전히 ‘꿈’을 이야기했다. 8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제2회 대한민국 콘텐트 페어’의 기조 강연을 위해 서울을 찾은 린 다로 감독. 청바지에 하늘색 줄무늬 남방 차림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는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 ‘폴, 엄마가 간다!’(가제)의 제작 소식을 깜짝 발표하며 “할리우드 타도가 이번 목표”라고 자신했다.

린 다로 감독은 열일곱 살에 일본 최초의 애니 전문 제작사 도에이(東映) 동화에 입사, 애니메이션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철완 아톰(한국제목 ‘우주소년 아톰’)’ ‘우주해적 캡틴 하록(한국제목 ‘하록 선장’)’ 등을 연이어 히트시켰다.

특히 1979년 만든 극장판 ‘은하철도 999’는 일본 영화 흥행집계 사상 최초로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하는 등 대성공을 거뒀다. 이후 3D 애니메이션으로 눈을 돌려 2001년에는 ‘메트로 폴리스’를 감독했으며, 최신작인 풀 3D 애니메이션 ‘요나요나 펭귄’은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한일합작 애니메이션 ‘폴, 엄마가 간다!’ 추진 계획을 발표했는데.

“한국 측 지영준 프로듀서(영화 ‘사이보그 그녀’ 프로듀서)로부터 제안을 받고, 줄거리와 기획의도가 맘에 들어 공동 제작을 결심했다. 50여 년간 2D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고, ‘메트로폴리스’가 처음으로 해본 3D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그 작업을 하면서 기술의 힘을 느꼈다. 지금 3D 애니 시장을 지배하는 건 할리우드 픽사다. 우리는 아시아의 취향과 감성을 담은 3D 애니를 만들어 내 할리우드를 ‘앗’ 하고 놀라게 만들고 싶다.”

-10대에 애니업계에 입문했다. 도에이에 입사할 때 “합격시켜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하하.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다. 학교가 너무 싫어 열세 살부터 영화만 보는 ‘불량소년’이었고,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도에이 동화에 꼭 들어가고 싶어 ‘저는 귀사에 들어가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에, 입사하지 못하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냈다. 사실은 실사영화 감독이 꿈이었고, 도에이에 들어가면 영화 쪽으로 풀리지 않을까 했던 것이니, 불순한 동기로 애니메이션을 만나게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웃음)

-데쓰카 오사무(‘철완 아톰’의 원작자), 마쓰모토 레이지(‘은하철도 999’ 원작자) 등 유명 작가들과 인연이 깊다.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다. 당시에 도에이에서 만날 놀기만 해 ‘이러다 잘리지 않을까’ 싶었을 때 데쓰카 오사무를 만났다. ‘무시 프로’라는 회사를 만들어 ‘철완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등을 제작해 성공했다. 마쓰모토 레이지와도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됐고, 생각해보면 나를 서포트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았다.”

-일본 애니의 발전과정을 직접 체험한 사람으로서, 애니 대국이 된 저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일본 애니계는 가난했다. ‘철완아톰’을 만들 때만 해도 적은 예산으로 일주일에 한 편씩의 방영 분을 만들어야 하는 악조건이었고 다들 잠도 못 자며 일했다. 하지만 정말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혜와 체력을 짜내며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오시이 마모루(‘공각기동대’ 감독) 같은 뛰어난 감독도 나오게 됐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의 파워’다.”

-기술 발전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애니를 하는 사람으로서 테크놀로지의 편리함을 인정하지만, 그 편리함의 뒤에는 잃어버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휴대전화가 생기면서, 얼굴을 마주보고 서로를 읽는 소통방식이 사라진 것처럼. 지금의 문화, 특히 애니를 만드는 데 있어 기술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인간이 소프트에 좌우되어 버리면 안 된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소프트를 이용하되 거기에 기대지는 말라’고 늘 강조한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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