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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물의 재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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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고비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 사라져 간, 카라호토(黑水城)란 이름의 도시가 있었다. 실크로드에 인접한 까닭에 교역의 근거지로, 불교와 이슬람이 만나는 문명의 십자로로 번성했던 곳이다. 1908년 이 일대를 탐사한 러시아인 코즐로프는 수십 점의 불상과 500여 점의 불화, 2만4000여 점의 고문서를 발견했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 사이에는 녹색 비늘을 단 구렁이 한 마리가 카라호토 성에 살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이를 몽골군에 패해 성을 내준 성주의 원혼이라 믿는 주민들은 지금도 성터에 접근하기를 두려워한다. 처음으로 카라호토를 TV 카메라에 담은 NHK 다큐멘터리 『실크로드』(1980년)에는 길 안내를 부탁 받은 노인이 “(취재진에) 동행해 드리겠지만, 나는 성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전설에 따르면 카라호토는 세 차례에 걸친 몽골군의 파상 공격에도 끄떡없이 버텼다. 몽골군은 인공수로를 파 성으로 들어가는 물줄기를 딴 곳으로 틀어버리는, 말 그대로의 고사(枯死) 작전을 구사했다. 견디다 못한 성주는 처자식을 죽이고 성문 밖으로 나와 싸우다 죽었다. 이 전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 확실치 않지만, 카라호토의 최후가 물 부족과 관련 있으리란 추론이 가능하다. 최근 연구 결과로는 몽골군의 침략 이후에도 번성하다 15세기에 이상 기후 현상에 따른 급격한 사막화로 폐허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어디 사라져 간 것이 카라호토뿐이랴. 남한 땅 3분의 2 넓이로 세계에서 넷째로 큰 호수이던 아랄해가 10분의 1로 쪼그라들어 더 이상 ‘바다 해’ 자를 붙이기가 민망해졌다. 20년 전의 위성사진과 지금 모습(본지 9월 3일자 1면)을 비교하면 과연 같은 곳인지 의심스럽다. 붐비던 항구에는 배가 자취를 감췄고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도 고향 땅을 떠나고 말았다. 문제는 지구온난화와 오염, 개발의 합작품인 사막화가 지구촌 곳곳에서 동시 진행 중이란 사실이다.

북한의 황강댐 방류로 무고한 시민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의도적 수공(水攻)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공할 물의 위력을 새삼 일깨워준 사고였다. 하지만 수공보다 더 큰 재앙은 물이 사라지는 것이다. 인류는 몸의 70%가 물로 채워져 있는 존재다. 물을 떠나 살 수 없는 건 인류 역시 마찬가지다. 전설 속 카라호토와 현실의 아랄해가 더 이상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겠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