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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374.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제8장 도둑

성품이 갯벌처럼 텁텁하면서도 시원시원한 사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선술집에 선 채로 혓바닥이 쌉싸름한 조선갓김치를 안주하여 마시는 막걸리가 그와는 영락없이 어울린다는 인상이 들었다. 그러나 사내는 선술집을 좀처럼 떠날 낌새가 아니었다.

"지도에서 보면 고흥이 바위에 붙은 게딱지만한 꼴이지만,가보면 우리나라에 그런 보배같은 땅이 없지라. 고흥도 삼면이 바단데, 삼면이 바다니까 섬은 오죽 많겠나. 얼추 꼽아봐도 백팔십개가 넘지라. 저그 해창만 알제?

거그서 따던 석화는 예부터 나랏님에게 진상하던 것이었지라. 알고 보면 여자만하고 득량만에서 잡히는 피조개니 새조개.고막.바지락이 남도 장터를 주름잡고 있당게.

하기사 온 나라가 개발이니 뭐니 흙먼지를 일으킬 때는 우리만 빼놓는가 싶어서 쪼까 서럽기도 했지라. 그런데 요새 와서는 개발 안된 게 다행스럽게 됐뿌렀어. 개발이 됐더라면 갯벌이 살아있을 리 만무하겠지라. 그런디 아까 강원도에서 왔다는 말을 들은 것 같은디, 강원도보다는 서울 말씨와 닮았던디?"

"장돌뱅이 출발은 강원도에서부터지만, 어릴 때는 서울에서 살았지요. 다시 강원도에서 경상도로, 그리고 서울로 정처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내가 어디 사람인지 모르게 되었어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모두가 내 나라 땅인데. "

"동상 말이 맞어. 그런디 동해안이며 남해안 포구에서는 쌍끌인지 외끌인지 때문에 시끄럽다던디? 쌍끌이가 멀쩡한 높은 양반 회전의자 하나를 잡아먹어뿌렀제?"

"일본하고 재협상을 벌여서 쌍끌이 어선들이 조업하게 됐다지만, 결국은 줄 것 다 주고 생선 몇 마리 구걸하는 꼴 되겠지요. 생선 몇 마리 얻고 일본 저인망들이 쳐들어와서 복어니 백조기니 싹쓸이를 해가면, 결국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격이고 물에 물 타는 꼴이 아닙니까. 그래서 어민들 사이에는 해양부를 채낚기하겠다고 벼르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게다가 어장으로 나가보았자, 진작부터 고기가 잡히질 않았어요. 바닷물이 더워지면서 찬물에 사는 어종들이 잡히지 않은 지가 오랩니다. 그것들이 더운물을 싫어해서 삼팔 이북에서 회유한다는 거예요. 동남해안 어민들의 생계가 막연해졌지요. 자포자기해서 쌓아둔 빈 생선상자 더미 아래 모여앉아 줄담배만 태운 답니다.

명태. 오징어. 조기. 갈치. 대구. 고등어 같은 생선들은 서민들 밥상에 단골로 오르는 것들 아닙니까. 이런 생선들이 며칠 사이에 치솟아 금값이 되어버렸답니다.

금값되고부터 유통업자들 냉동물 비축량도 덩달아 동이 나서 중국산 생선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어요. 고사리까지 중국산을 먹게 되는가 싶더니 이젠 갈치나 고등어조차 중국산에 점령당할 판국입니다. "

"낭패났지라. 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제. 우리는 고려적부터 바다에 나가서 미역 뜯고 파래 뜯고 그물쳐서 고기 잡아 연명해온 족속 아닌가.

동상도 알제? 시방도 바다가 없으면 굶어서 눈 허옇게 치뜨고 식은 방귀 뀌는 사람들 많을껴. 그런디 이러저러해서 바다가 거덜나고 어부들이 조업도 못하면, 지금까지 살락꼬 쌔빠지게 고상해온 것이 몽땅 물거품이랑게. 구걸했다니 말인디. 쪽박차고 일본 사람들 앞에서 장타령 부르는 꼴이 눈에 선해서 뒷덜미가 화끈하당게. 하기사 뭣이당가.

명태가 안잡힌다니까 말인디, 명태새끼 노가리라고 있쟈? 그거 겁나게 잡았뿔디 결국에는 제 송곳으로 제 눈 찌른 꼴이 됐뿌렀제. 그거 마구잡이로 잡는기 아닌디.

맞쟈? 그런데 점잖은 말로 어패류라는 고흥산 고막이며 바지락이며 우럭이니 돔은 수입 것이 아니랑게. 우리는 우리 것을 먹어야제. 그래야 사람이 기가 살고 힘을 쓰제. 내 말이 껄쩍찌근한가? 우리 것이 그토록 소중한 까닭을 사람들이 잘 몰라서 탈이랑게. 좁은 땅에 인종은 많이도 살아서 배불리 먹지 않고 볼가심이나 할라면 몰라도 수입 것 아니면 먹을 것이 없게 됐뿌렀네. "

"틀리진 않았습니다만, 좌판은 부인께 맡겨두고 이렇게 오래 비켜있어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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