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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고유가 장기화 대책은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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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제 유가가 연일 최고치를 넘나들고 있다. 최근의 고유가 행진은 이라크 사태 등 중동의 정세 불안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Risk premium)에 기인하고 있다. 중국.인도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미국의 경기 회복으로 석유 수요가 증가한 것도 주 요인이 되고 있다. 현 유가수준은 지난해보다 배럴당 약 10달러 올랐는데 이 중 리스크 프리미엄이 약 7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현 국제 석유시장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여유 공급능력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추가생산 능력이 하루 100만배럴 수준에 불과하고 재고도 지난 5년간의 최저평균에 가까운 실정이다. 따라서 이라크나 러시아.베네수엘라 주요 공급국에서 작은 사건만 생겨도 OPEC의 추가 증산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석유수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우려로 이들 지역에서 조금만 이상 조짐이 보이면 리스크 프리미엄이 탄력을 받고, 유가는 가파르게 치솟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라크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미국 대선 때까지는 현재의 고유가 수준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유가 급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소비절약 외에 정책수단이 매우 제한적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는 유가 급등이 국민경제 등 국가적 차원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국민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할 것이며, 정부 차원에서도 에너지 담당부서인 산자부뿐 아니라 건설교통부나 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 등 모든 부처가 대책 마련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에너지 절약에는 시민단체의 역할과 협조가 중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석유의존도의 감축, 고유가에 견디는 산업체질 개선, 해외자원개발 확대, 거래전문가 양성을 통한 선물시장 활용 등의 방안을 복합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먼저 석유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천연가스의 안정적 도입이 중요한 과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러시아로부터의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 도입은 조속히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수입처 다변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LNG와의 경쟁을 통한 천연가스 도입의 경제성 제고에도 기여할 것이다.

산업체질을 바꾸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나, 경제전반과 관련돼 있어 결코 시행이 쉽지 않다. 에너지 저소비 산업의 성장을 확대하거나, 생산제품의 부가가치를 제고해 에너지비용의 영향을 축소시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제품의 전반적인 고급화가 이뤄져야만 가능하다. 일본 및 서유럽처럼 우리도 범국가 차원의 노력이 요구된다.

해외자원 개발의 확대는 공급의 안정성과 수입 협상력 제고뿐 아니라 가격 상승분을 이익으로 환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위험부담, 특히 기술적 위험부담이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20년 이상 앞선 1958년에 처음 해외석유개발에 착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개발수입률이 10%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도 현재의 3% 수준을 목표치인 10%대로 끌어올리는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그 밖에 선물시장의 활용, 수입방식 및 소비의 융통성 제고, 비축물량 확대 등이 필요하다. 특히 중동 산유국.러시아, 그리고 석유개발 확대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과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함은 물론 석유수입국과의 협력관계도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의 마련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 시장이 안정돼 있을 때 추진할수록 유리하고 효과가 큰데도 조금 유가가 내리면 대책마련에 소홀해지곤 한다. 이번만은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에너지문제에 관한 한 단기적.일시적 접근보다는 중장기적.종합적 접근을 일관성 있게 꾸준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방기열 에너지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