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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미스터리] 2. 제주 거북이 동해로 간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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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6월 초 강원도 양양군 인구리 해변. 바다거북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등딱지가 유난히 붉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이런 거북을 처음 본 어부들은 당국에 "괴상한 놈이 나타났다"고 신고했다. 그 한달 전 부산 영도 사람들도 해변에서 비슷한 바다거북의 사체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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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수산과학원이 조사한 결과 두 '놈'은 모두 바다거북과의 붉은바다거북으로 확인됐다. '놈'들은 제주를 제외하고 한반도 연안에서 발견된 적이 없었다. 일본 근해나 남태평양에 살면서 남제주에 가끔 모습을 보이는 열대.아열대 종이다. '놈'들이 강원도와 부산에 올라온 이유는 무엇일까. 길을 잃어서, 아니면 별종이라서….

'엉뚱한 곳'에 나타난 '놈'들은 붉은거북만은 아니다. 11일 경북 포항 구룡포에선 농어의 한 종류인 만새기가 잡혔다. 길이가 어른 키만한 이 물고기는 괌.사이판에서 주로 잡히고 간혹 남해에 나온다. 이처럼 금세기 들어 한반도 연안에 등장한 게 확인된 열대.아열대 생물은 10여종. 제주 연안에서 잡히던 은행게.방어.청돔 등이 서해와 동해에서, 일본 남부 근해에 사는 아열대성 농어(인디언촉수.남방주걱치 등)가 제주에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남태평양 해역에 사는 보라문어.노랑가오리.흑새치 등도 동해에 출현했다.

"최근 제주도 해역에선 색깔이 알록알록한 열대 관상어가 자주 잡히고 있습니다. 매년 새로운 어종이 학계에 보고되고 있을 정도지요."(해양학자인 군산대 최윤 교수)

수온은 기상 상태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렇다고 괴상한 '놈'들의 출몰을 '일시적인 가출'이라고 평할 수 있을까. "지구 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우리 해역의 수온이 서서히 올라가면서 더운 곳에 살던 '놈'들이 몰려들고 있는 겁니다." 국립수산과학원 황선재 연구사의 설명이다.

취재팀이 국립수산과학원 정희동 박사팀에 의뢰해 분석.예측한 결과 지난 35년간 남해의 수온은 0.83도, 동해는 0.82도, 서해는 0.94도 올랐다(주로 수심 50m 이내, 육지에서 100마일 이내 연평균 연안온도 기준).

1도 가까운 수온 차이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

"겨울철 평균 수온을 놓고 설명해 봅시다. 부산(13도)과 포항(12도) 해역의 차이지요. 즉 지금의 포항 수온이 35년 전 부산 수온과 같을 정도로 따뜻해졌다는 거지요. 육지보다 온도 변화가 덜할 해양 생태계에서 이 정도 변화는 대단한 것입니다."

문제는 과거보다 미래다. 정 박사의 시뮬레이션 결과 석유.석탄 사용 등이 지금 추세로 계속됐을 때 35년 뒤 남해.동해.서해 수온은 평균 1.3도 이상 올라갈 것으로 예측됐다. 결국 동해는 현재의 남해 정도가 되고 남해의 수온은 현재 일본 남부 해역 수준이 되는 셈이다.

새로운 어종만 출현하는 것도 아니다. 14일 경북 울진군 앞바다. 어민들이 설치해 놓은 그물엔 고등어 새끼 수십마리가 걸려들었다. 황선재 연구사는 "따뜻한 물에 사는 고등어 새끼가 동해에서 이렇게 많이 발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최윤 교수는 "자동차나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이 늘어나고 녹지가 감소하는 등의 지구 온난화가 바다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화석연료 사용 등을 줄이지 않는 한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진실 또는 거짓=대기온도 등의 영향을 직접 받는 수심 50m 이내의 바닷물은 수십년 새 많이 따뜻해졌다. 그럼 심해는 어떨까. 얕은 곳만큼 달궈졌을까. 정희동 박사는 "수심 200m 이상의 수온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분석은 또 다른 환경 재앙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뜨거워져 밀도가 낮아진 얕은 바닷물이 여전히 밀도가 높은 심해로 잘 가라앉지 못해 물의 순환이 더뎌진다. 이로 인해 해양동물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물속 산소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립수산과학원의 조사 결과 동해 물속 산소량은 지난 35년 새 조금씩 줄어들었다.

영화'투모로우'에서처럼 바닷물 온도가 몇 주 사이에 10여도나 움직여 빙하기가 오는 일은 벌어질 수 있을까."지금의 수온 변화로는 그런 재앙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렇지만 마음을 푹 놓고 있을 일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공기와 땅.바닷물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면서 빙하가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경대 강용균(해양학과)교수는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면 최악의 경우 몇 세대 뒤 빙하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뜩이나 기름값이 오른 요즘이다. 가끔이라도 승용차를 세워둬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자손들이 빙하기를 맞지 않게 하기 위해.

이규연 기자.손희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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