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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 “문화유산답사기 시즌2 기대하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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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의 저자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그가 서울·경기·충청 등 그간 다루지 못했던 지역을 찾아 새로운 답사기를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고 했던 그가 새로운 국토 박물관을 개척하는 중이다. [사진작가 이영균 제공]

시작은 미미했다. 돈 없는 잡지의 편집위원을 맡은 그는 원고료 줄 돈을 아끼려 직접 글을 썼다. 딱 3회만 쓰고 다른 ‘글쟁이’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아무도 떠맡으려 하지 않아 별 수 없이 계속 썼다. 전국의 사찰·문화재를 찾아 떠돌던 발걸음을 종이 위에 옮겼을 뿐이다.

그리고 단행본으로 엮었다. 월간지 『사회평론』에 연재, 1993년 책으로 나오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이후 『답사기』)얘기다. 『답사기』는 ‘그 시대’의 풍경을 담고 있다. ‘그 시대’라면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세상은 변화에 목말라하던 때다. 『답사기』(전 3권)는 통합 200쇄, 판매량 230만부를 돌파했다.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3권이 나온 지 12년이 지났지만 요즘도 『답사기』는 한해 2만부 정도 나간다.

책의 저자 유홍준(60·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전 문화재청장이 7일 서울 인사동의 한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답사기』 4권의 집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유 전 청장은 이를 “『답사기』 시즌2’라고 표현했다. ‘시즌1’에서 다루지 못한 서울·경기·충청권과 제주도를 포함해 4, 5권을 낼 계획이다. 중앙일보 시사지 월간중앙 10월호부터 ‘시즌2’가 연재된다. 첫 회에선 전남 순천 선암사를 다룬다.

◆내 문체는 수다체=유 전 청장은 『답사기』를 쓰기 전까지 미술평론가와 학자로서 글을 썼다. 글쟁이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답사기』 때문에 그는 글쟁이 판에 우연찮게 끼어들게 됐다는 것이다. 구수한 입담, 신랄한 비평, 읽다 보면 어느새 몇 페이지가 훌쩍 흘러가게 빠져드는 그의 문장을 글쟁이들은 ‘수다체’라고 명명해 줬다고 한다. 그는 이를 “구어체의 가치를 살린 것으로 평가해 준다면 영광”이라고 말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수다 같은 이야기, 구어체의 맛을 글로 옮긴 것이다. 유 전 청장은 『답사기』의 잡지 연재 첫 회만 보고도 출간을 권한 백낙청 창비 편집인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고 소개했다.

◆이젠 60대의 시선으로=『답사기』가 처음 나왔을 때 대형서점들은 아예 계산대 옆에 책을 쌓아놓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바로 집어서 책을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강연 요청도 쇄도했다. 그는 1년에 100회 이상 전국을 돌아다니며 ‘슬라이드 강연’을 했다. 그는 “첫 권이 나올 당시는 문민정부 초기였다.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검열 걱정 없이 비판할 수 있는 시대였다”고 말했다. 사회적 금기가 풀리면서 박정희·군사 정권 시대에 대한 비판에 사람들이 통쾌해 한 면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민주화가 다 돼버린 세상이다. 예전 책을 그대로 둘 수 없어 새 연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연재엔 ‘색깔을 달리하면서 다른 메시지’를 담겠다는 것이다. 90년대 초반엔 그도 40대였다. 당시의 재기발랄보다 이젠 60대의 깊은 시선으로 국토를 감싸고 싶다는 생각이다. 문화재청장을 지내면서 문화재관리에 대한 생각도 보다 신중해졌다고 한다.

◆새로운 답사 루트는=그는 “문화재청장 시절 충북 지역의 산성(山城), 지리산의 산사(刪붇)를 묶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는 방안을 생각했다”며 산성 순례와 산사 순례를 쓰고 싶다고 했다. 특히 산사는 다른 불교 문화권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만의 독특한 멋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는 “서울 성북동의 성락원은 담양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내겐 한국의 3대 정원”이라며 서울의 문화유산을 재발견하고 싶다고 했다. 여주 고달사지, 원주 법천사지, 흥법사지 등 폐사지도 그의 답사 루트 중 하나다.

유 전 청장은 “기회가 닿으면 3000여 개 도서로 구성된 한국의 섬 기행을 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90년대 『답사기』가 널리 읽힌 배경 중 하나로 당시 맞이한 승용차 보유 700만 시대를 꼽기도 한다. 중산층 가구까지 승용차를 보유하게 되면서 교육·문화적 의미가 담긴 가족 여행의 욕구가 폭발했다는 해석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오면 많은 이들이 요트를 몰고 한반도 해안의 수많은 섬들을 찾고 싶은 문화적 욕구가 생겨나지 않을까요.”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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