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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의사' 케보키언 1급 살인죄 기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지난해 안락사 논쟁을 일으켰던 미국의 잭 케보키언 (70) 박사가 다시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해 11월 토마스 유크 (52) 를 안락사시킨 후 그 과정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방송사에 제공, '살인죄' 로 기소된 케보키언에 대한 재판이 23일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번 재판은 '자살방조 혐의' 로 기소돼 무죄판결이나 미결로 끝났던 네번의 이전 재판과 달리 강경한 입장의 검찰과 자신의 신념을 옹호하는 케보키언간에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미시간주 오클랜드 카운티의 존 스크르진스키 검사는 이날 법정에서 "이 재판은 자살방조나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다루려는 것이 아니다" 라고 전제한 뒤 "케보키언의 행위는 유크에 대한 명백한 살해" 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그를 철저히 '살인자' 로 몰기 위해 기소장에도 지난해 11월부터 미시간주에서 발효된 안락사금지법 위반혐의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재판정에서 안락사에 대한 감정적 논쟁이 벌어질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그러나 케보키언은 "범죄가 성립되기 위해선 행위자의 악의나 악의적 행동이 증명돼야 한다" 며 자신의 살인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는 스스로를 '국가의 사형집행인' 또는 '임무에 충실한 군인' 에 비유하며 "나는 유크에 대해 타당성 있는 살인을 집행했을 뿐" 이라고 강조했다.

비디오 공개도 안락사에 대한 논의를 법정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였다는 것. 그는 또 12명으로 이뤄진 배심원들을 향해 "여러분의 판단은 역사가 보고 있다" 고 말했다.

케보키언은 이번 재판을 거의 변호사의 도움없이 단독으로 이끌고 있다.

"누구보다 이 재판의 초점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이 스스로 변호를 하겠다" 고 나서 판사의 허가를 얻어낸 것이다.

판사가 "유죄판결을 받으면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 며 전문변호인을 내세우도록 권유했으나 그는 "이제 내겐 남은 시간도 얼마 없다" 고 응수했다.

이번 재판에서 검찰이 강조하고 있는 결정적 살인증거는 비디오 테이프. 예전의 안락사 대상 환자들은 케보키언이 직접 발명한 '자살기계' 에 앉아 스스로 버튼을 눌러 약품이 체내에 흡수되도록 했다.

반면 당시 CBS로 방영된 비디오엔 케보키언이 유크와 귀엣말을 나눈 뒤 치명적인 염화칼륨을 직접 주입하는 장면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케보키언은 비디오 방영 직후 인터뷰에서 "만약 이 일로 감옥에 가게 된다면 죽을 때까지 단식투쟁을 계속할 작정" 이라는 각오를 내비쳤다.

김정수 기자

[케보키언은 누구]

'죽음의 의사' 케보키언은 안락사 논쟁의 한 가운데 위치한 인물이다.

한편에선 시한부 환자들의 고통을 들어주는 '구원의 천사' 로 추앙받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살인기계' 라는 혹평을 받고 있다.

60년대에는 사형수들의 시신을 해부용으로 이용하자는 제안을 담은 책을 써 도덕적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90년 알츠하이머 환자의 요청으로 안락사 처벌규정이 없던 미시간주에서 첫번째 안락사를 시술한 뒤 1백30여명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이 때문에 그는 91년 의사 면허도 박탈당했지만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회생 불능의 환자가 스스로 죽음을 원한다면 마땅히 도와줘야 한다" 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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