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호의 도쿄24시] 소비심리 못살린 '공짜돈 처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도쿄의 오피스거리 간다 (神田) .우리로 말하면 사채업자에 해당되는 티켓상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상품권.극장표.기차표는 물론 정부가 찍어낸 우표까지 할인해 사고 판다.

이런 곳에 요즘 '지역진흥권' 이라는 신상품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역진흥권이란 소비진작을 통해 경기를 부양시킨다는 취지에서 각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공짜로 나눠준 구매권이다.

상점에 가면 현금과 똑같이 쓸 수 있으므로 효과로는 헬리콥터에서 뿌리는 현찰과 흡사한 셈이다.

이 티켓이 나오자 상인들은 저마다 '지역진흥권 취급' 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손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영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이다.

많은 주민들이 이를 갖고 상점으로 가지 않고 티켓상에서 현찰로 바꿔 저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에선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가 총동원되고 있지만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예컨대 관광소비를 늘리기 위해 주중에 휴일이 끼면 토.일요일과 붙여 3일 연휴를 쉬도록 하는 방안도 곧 실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것도 국내 여행업자들 사이에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하루 이틀 쉰다면 국내여행을 하지만 사흘을 쉬면 해외여행을 떠나므로 오히려 장사가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일본의 저축액은 부쩍 늘고 있다.

지난해 샐러리맨들의 저축액은 1년새 8.1%나 늘었다.

금리가 하락하자 모자라는 이자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아예 저축총량을 더 늘려버린 것이다.

금리가 떨어지면 저축이 줄어드는 것이 상식이나 이것이 일본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 결과 소비로 돌아갈 돈은 자꾸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소득감소와 소비위축이 반복되며 안으로만 꼬부라지고 있는 모습이다.

주가상승으로 늘어난 자산소득이 개인소비로 흘러가고 이것이 다시 주가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는 미국을 일본은 부러워만 하고 있다.

도쿄 = 남윤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