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지구를 돈 풍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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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하늘을 날고자 하는 꿈은 아득한 옛날부터 시작됐다.

새와 같은 날개를 사람의 팔에 붙이려는 꿈도 있었고 거대한 연 (鳶)에 매달려 하늘에 올라가는 꿈도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까지 조그만 볼일이나 관광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타는 지금 세상은 옛날 사람들에게 꿈의 세계일 뿐이었다.

비행의 실용화를 처음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은 풍선이었다.

1783년 몽골피에 형제가 만든 열기구 (熱氣球)가 파리 상공을 가로질러 9㎞의 비행을 한 뒤 풍선은 곧 군사목적에 쓰이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미국의 쿠바 침공에 이르기까지 밧줄로 묶은 풍선에 매달린 관측병의 모습은 19세기 전쟁터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풍경이 됐다.

자체 동력이 없이 바람에 떠다니는 풍선이 그 자체로 항공시대를 연 것은 아니다.

풍선에 모터를 단 비행선이 19세기말부터 실용화됐다가 20세기 중엽에는 비행기로 대치된다.

아직까지 풍선비행이 가진 용도는 두 가지 뿐이다.

대기관측과 스포츠다.

벨기에에서 활동한 오귀스트 피카르 (1884~1962) 와 미국에서 활동한 장 피카르 (1884~1963) 는 스위스 출신의 쌍둥이 과학자다.

이들은 풍선을 써 인간의 성층권 탐사를 실현했다.

1931년 오귀스트가 내압 (耐壓) 선실을 써 15㎞ 상공까지 올라가자 장은 3년 후 같은 기술을 써 18㎞ 상공까지 올라갔다.

인간으로 최고 높이까지 올라가 본 오귀스트는 그후 가장 깊은 바다를 향한 도전에 나섰다.

심해잠수정 제작에 착수한 것이다.

종래의 잠수정이 모선 (母船)에서 밧줄로 내려진 것과 달리 오귀스트는 자체 부양력을 가진 잠수정을 설계했다.

공기보다 가벼운 헬륨을 풍선에 쓴 것처럼 물보다 가벼운 기름을 사용했을 뿐 풍선과 똑같은 원리였다.

오귀스트는 1953년 자신이 설계한 트리에스테호로 3천m 이상의 깊이를 잠수, 69세의 나이로 이 도전에서도 성공했다.

이때 그를 도운 아들 자크는 그후 미국의 지원을 받아 트리에스테호를 개량, 1960년 필리핀 바깥의 마리아나 해연에서 1만9백12m 잠수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자크 피카르의 아들 베르트랑 피카르가 엊그제 최초의 무동력 세계일주라는 기록을 세우며 20일간의 풍선비행에서 착륙했다.

고공 (高空) 과 심해 (深海) 의 과학탐사를 목적으로 내걸었던 할아버지 - 아버지와 달리 도전의식만으로 비행에 임했다는 차이가 세태의 변화를 말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고공의 기류에 몸을 맡긴 풍선이 지구를 돌 수 있게 된 것은 냉전종식 덕분이다.

이 시대의 변화가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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