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젊은층 수혈론'이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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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지난 주말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계개편구상으로 제시한 '젊은층 수혈론' 이 정계는 물론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각 정당과 정치인은 당장 각기의 기득권적 이해득실 면에서, 그리고 국민은 지난 수십년간 지속돼온 정치권의 인재충원 및 운영방식이 혁신될 수 있을지 여부에서 각기 예민한 반응과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된다.

고도의 정보화.국제화.민주화 사회로 특징지어지는 21세기를 대비, 선도해야 하는 우리의 정치권이 여전히 60년대 이후의 개발독재사회체제에서 안주하고 대항했던 세력들의 집합처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구조적 혁신의 당위성은 진작부터 제기돼온 문제였다.

金대통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의 인적 (人的) 자원을 젊은층으로 물갈이해 새로운 기풍을 일으키겠다는 그 자체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는 우리 역시 충분히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이의 실천방법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말해 정치권 인적 구조의 개편은 정당 및 권력의 제도와 운영의 민주적 혁신이 뒷받침될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金대통령은 새로운 젊은층 수혈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대상자군 (群) 이 어떤 부류일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앞으로 정치하고 싶으면 시민운동을 하라" 고 말한 한화갑 (韓和甲) 국민회의총무의 언급에서 보듯 여권 내부에서 나오는 말을 종합하면 시민운동단체의 신진기예들이 수혈의 주대상이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가 지난 10여년간 우리 사회에 미친 긍정적인 여러 요인들을 감안할 때 그것을 주도해온 젊은 운동가들의 정치권 진입을 맹목적으로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순수하고 자발적인 시민운동이 이제 막 꽃을 피우려는 시점에 그 핵심 엘리트들을 정계에 인위적으로 끌어들인다면 첫째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시민운동의 본궤도 진입을 저해할 우려가 있고, 둘째 시민운동이 정계진출의 발판으로 여겨질 경우 시민운동의 정치종속화 가능성 및 그로 인한 국민의 사시 (斜視) 와 시민운동내의 분란을 촉발하는 등 또 다른 부작용이 예견된다.

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종래와 같은 하향적 인재등용은 물갈이 효과는 보겠지만 여전히 친위세력의 교체 정도로 의미가 반감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각계 인재들이 정계에서 충분한 활동공간을 갖도록 하고, 그들이 특히 정당지도자의 사병화 (私兵化)가 되지 않도록 하는 정당민주화야말로 참된 '수혈' 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선진화는 인물쇄신은 물론 정당과 정치운영상의 민주화가 첩경임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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