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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강대 교수 이정우씨 '인간의 얼굴' 펴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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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기성학계의 고루함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가로지르기' 의 철학자 이정우 (40) 전 서강대 교수. 가로지르기라는 단어는 97년 그가 펴낸 책 제목으로 모든 사유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서양철학에만 매몰되지 않고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사상을 주창한다거나 기성세대의 관념을 가로질러 새로운 관점을 제시는 것 등이다.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철학으로 전공을 바꿔 푸코에 관한 연구로 박사를 받은 그는 95년 서강대 교수로 임용된다.

하지만 채 3년이 못돼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학문의 영역에서 '가로지르기' 를 해나가는 그에 대한 주위의 곱지않은 시선은 그의 자유를 결박했던 것. 그런 그는 더 이상 대학에 머물 수 없어 자유를 찾아 교수직을 떠났다.

그의 철학대로 '가로지르기' 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인간의 얼굴' (민음사.1만5천원)에서 그는 한국 철학계에 대한 반성과 이 시대 지식인들의 단절현상을 질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우선 그가 주목하는 현상 중 하나가 포스트모더니즘. 이 단어는 본래 하이데커.푸코.들뢰즈 등의 프랑스 사상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미국이 만든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창을 통해 푸코나 들뢰즈를 보기 십상이었고 이는 이들에 대한 곡해를 초래했다.

철학적 관점은 가려지고 문화상품화된 화려한 치장만 부각되다 보니 그들의 깊이 있는 사유보다 광기.성.욕망 등 말초적인 사유가 전부인 듯 보게 된 것. 이는 프랑스철학에 대한 전체적인 왜곡을 나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90년대 들어 유행병처럼 번진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후기구조주의 등 프랑스 현대사상의 본질이 흐트러진 것은 우리 지식계에 존재하는 단절현상에서 연유한다.

실제 프랑스 사유와 관련해 철학계.비평계.사회학계는 서로의 관심사에 따라 프랑스 사상가들을 찢어서 이해하고 있다" 고 그는 꼬집는다.

그가 보는 철학과 사회의 단절 그리고 세대간의 단절은 더욱 심각하다.

사회는 잘못 받아들여진 프랑스 현대사상을 유행처럼 얘기하지만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야 할 철학계는 철저한 현상의 무풍지대다.

실제 철학학회같은 곳을 나가보면 아직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왔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시류에 뒤떨어져 '대학 철학과의 시계' 는 완전히 멈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성학계는 권력을 쥐고 기득권을 위협하는 흐름을 철저히 배제한 채 '젊은이들의 사유는 유행을 따른다' 며 매도해 철저한 세대단절을 야기시키고 만다.

"이런 속에서도 프랑스 사유가 우리 지성계를 분위기를 바꿔놓았고 담론의 개념을 가져다 주는 등 긍정적 부분을 인정 않는 것은 아니다" 라는 그는 앞으로 근현대사를 통해 우리 시대를 해명하는 작업과 서구 자연과학에 동양적 '기학 (氣學)' 을 통합하는 작업 등의 '가로지르기' 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한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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