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 오늘의 저술에 담긴 일본의 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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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수주의자로 유명한, 『금각사』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자살(1970년)하기 얼마 전 그의 집을 찾았던 한 외국기자는 깜짝 놀랐다. 도쿄 남쪽의 단독주택은 프랑스식 대문·발코니부터 인테리어까지 몽땅 서양풍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는데, 그게 정원의 한 복판의 큼지막한 오르페우스조각상이었다. 기자가 물었다. “100% 일본정신이라는 야마토혼을 외치는 당신의 집이 왜 이런가?” 허를 찔린 그는 “보이는 것 빼고는 모두 일제”라고 우물쭈물했다지만, 미시마의 이런 도착적인 이국취향을 어찌 봐야할까?

지난 해 선뵌 탁월한 저술 『일본의 재구성』의 저자 패트릭 스미스에 따르면, 그것이야말로 국수주의자를 포함한 일본인의 혼란스러운 내면풍경을 상징한다. 야마토혼도 거대한 픽션에 불과한데, 현재는 그들 국민을 가두는 ‘과거의 감옥’일 뿐이다. 저들 학계의 천황으로 통하는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 시각도 실은 그쪽이다. 에도시대, 메이지 유신라는 변혁, 맥아더가 심어준 민주주의의 선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의 시민적 자아와 모더니티는 아직껏 등장한 바 없다는 고백을 자기 책『충성과 반역』에 한다.

확실히 일본인은 놀라운 근대경제는 이뤘을지 모르나 근대성은 이룩치 못했다. 대신 야마토혼 같은 음습한 폐쇄·독선을 키워왔다. 명쾌하지 못한 과거사 처리로 이웃국가와 분쟁을 낳는 독선도 그 때문이다. 저들은 20세기 내내 근대 계몽(enlightenment)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저쪽에서 나 홀로 서성대온 이상한 나라, 두 얼굴의 국가다. 반세기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에 쏠리는 국제사회의 관심은 그런 이유다. 선거혁명을 이룬 일본은 어디로 갈 것인가? 탈아입구(脫亞入歐)의 헛구호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친구로 돌아올 것인가?

이걸 가늠해 보기 위해 나는 일본론 중 김진현 전 과기처 장관의 『일본 친구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되읽었다. 이 책은 국내 지일파 인사가 쓴 강도 높은 일본 비판론이다. 시각은 일단 스미스, 마루야먀 등과 같다. 참된 모더니티를 이룩치 못한 저들에게 주는 엄중한 충고이지만, 한·일 공동의 집짓기를 위한 대담한 미래 제안으로 연결되는데 핵심은 이렇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한 번도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없었던 묘한 나라다. 맥아더, 개항을 가져온 구로부네(黑船) 등 외부요인의 개입은 저들의 숙명일까?

때문에 저자는 보수 주류의 전면적인 변화 없이 진정한 개혁이 불가능하다면, 최후의 카드를 뽑으라고 정면에서 주장한다. 정치실세인 일왕이 뒤에 숨어있지만 말고 나서라는 것, 그래서 ‘위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일본을 변혁시키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 복귀하라고 요구한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게 민주당 정권이다. 그들이 과거의 감옥을 헐어낼 것인가? 일본이 변화하고, 우리도 탄력 대응해 한·일 미래의 집짓기가 가능할까? 미래 예측도 역시 좋은 책에 있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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