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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 -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 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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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국민의 눈을 막지 않는 것이 의전.” 김석우(63)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전 통일원 차관)은 남북관계가 극도의 딜레마에 빠지면 항상 북한 전문가그룹 사이에서 부상하는 인물이다. 교수, 외교관, 전 고위공직자, 전 국회 국방·외무통일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던 의원 등이 공식 또는 비공식 모임을 갖거나 세미나를 개최할 때면 김 원장의 모습은 항상 메인 테이블에서 만나게 된다.

핵 재처리 추진하던 한국 北 자극할까봐 DJ가 중단시켜 #수조 원 절약할 수 있는 ‘평화적 핵주권’… 지금은 논의조차 못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강대국들의 발언이 급증하고, 특히 8월6일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북한에 인질로 잡혀 있던 2명의 여기자를 구출한 사건이 전 세계를 주목하게 했을 때도 이른바 정부 외곽에 있는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김 원장과 이마를 맞대고 향후 전개해야 할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외교관 출신이면서 대통령 의전수석을 거쳐 통일원 차관을 지내고 4년간 미국의 국제전략연구소(CSIS) 고위연구원으로 활동하다 국회의장비서실장을 지낸 그의 다양한 경륜과 실전적 지혜가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현대아산 직원 유 모씨가 이유도 없이 북한에 체포돼 130일이 훌쩍 넘도록 억류된 채 행방조차 알려지지 않고, 오징어를 잡으러 나갔던 ‘800연안호(선장 박광선)’가 북한 경비정에 나포된 후 역시 행방조차 알 수 없이 구금돼 있음에도 금강산관광객 피살사건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지만 통일부가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라는 맥 빠진 메시지만 북한에 보낼 뿐 능동적이고 과감한 액션을 취하지 못할 때, 대북 대응조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답답한 심정은 8월의 끈적거리는 습도 속에 지쳤을 것이다.

이 같은 시점에 ‘북한 문제와 외교안보정책’에 관한 한 국내 최대 학술세미나 기록을 보유한 김석우 원장을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NDI)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지혜와 함께 무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의전수석 시절의 에피소드도 들을 겸해서였다.

김 원장은 NDI의 태동 배경과 역할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최근 원자력발전과 관련해 ‘사용후핵연료(Spent Nuclear Fuel)’의 재처리 문제가 김대중 정권에 의해 중단됐다는 충격적 이슈를 언급했다.

원자력발전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는 문제가 NDI의 주요 세미나 중 핵심 테마였다는 것을 설명하는 가운데 의외의 이슈가 부각된 셈이지만, 재처리 문제는 한때 방사선폐기물 저장소 논란으로 엄청난 후유증을 낳았던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기 때문에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역대 정권이 모두 북한에 속은 셈이지만 199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북한의 핵 개발을 억제하려면 남북비핵화 공동선언 속에 농축·재처리 포기를 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발표해버림으로써 이미 고리·월성·영광·울진 등 4개 지역 원전 20기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가 1만t을 넘은 상태이고, 2016년 이후에는 발전소마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으나 우리는 사용후핵연료의 재사용은커녕 논의조차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닥쳐올 미래의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김영삼 정부 시절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민간주도 형식으로 추진했지만, 그것이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중단됐다는 얘기다. 물론 최근에 북핵 문제가 불거지고 재처리 문제가 다시 심각하게 대두되자 지난 6월 국회에서 ‘평화적 핵연료 재처리’ 등 평화적 핵주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여론화되지 못했다.

김 원장은 NDI가 결코 정치적 ‘이너-캐비닛(innercabinet·소수 실력자들로 구성된 비공식 자문위원회)’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NDI는 사실 친목그룹이나 다름없던 ‘마포포럼’에서 출발했어요. 마포포럼은 어떻게 시작됐느냐, 제가 김영삼 대통령 때 초대 의전수석을 했습니다. YS(김영삼)께서 깜짝인사를 많이 하시는 스타일이잖아요? 한승주 전 장관 같은 경우는 자신이 그만두는 것을 TV를 보다 알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하하…. 그런데 당시 장·차관은 거의 관료로 30년 정도 일한 사람 중 제일 우수한 사람을 발탁했단 말이죠. 물론 정치인도 극히 일부 있었지만 각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인물 중 리쿠르트, 스크린해서 뽑았거든요. 제일 전문가들이죠. 그런 사람을 깜짝인사로 내보내고 하니 불만도 터졌지만 너무 아깝지 않으냐, 그래서 지금 NDI 이사장으로 계시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께서 당시 비서실장을 그만두고 정무특보로 계셨을 때 대통령한테 보고 드렸어요. 불만도 있지만 전부가 최고 전문가들인데 친목단체를 만들어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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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시절 마포포럼에서 출발

NDI의 설립 배경과 비화에 대한 김 원장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YS께서도 흔쾌히 좋겠다 하셨어요. 그래서 장·차관 출신을 중심으로 1996년 태동한 것이 마포포럼이죠. 거기에 주요 목표 3가지, 즉 ‘자유민주주의를 확산한다’ ‘시장경제체제를 발전시킨다’ ‘평화적 통일을 이룩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부설기구로 공익성 있는 사단법인을 만들어 통일원에 등록한 것이 NDI에요. 심사는 엄청 까다롭습니다. 공익성 여부를 철저히 심사해요. 그래야 공익기부금 지정 연구원이 되는 겁니다. 공익기부금은 예를 들어 A기업이 이익금의 5% 이내에서 연구원에 기부하면 기부한 액수만큼 기업이 세금공제를 받는 거지요. 정부 시스템이 그렇게 돼있어요. 그러면 기업도 좋고 연구단체는 활동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그동안 어떤 연구활동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그동안 학술행사와 세미나를 72회째 했는데, 의제는 다양하게 많을 수밖에 없었지만 첫 번째 테마가 바로 핵 재처리 문제를 심도 있게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박관용 이사장과 김시중 전 과기처 장관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아직 결실을 못 보고 미완의 상태로 있습니다만 이게 무슨 얘기냐, 우리가 원자력발전을 하면 핵변환에 의해 플루토늄 같은 찌꺼기가 나오잖아요?

그걸 지금 1만6,000t 정도는 저장할 수 있지만 1만t 정도는 그냥 쌓아두고 있는 겁니다. 그걸 재처리하면 거의 소멸되고 6% 정도를 다시 연료로 쓸 수 있어요. 그것만 해도 몇 백억 달러가 절약돼요. 수조 원을 절약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그런 국가적 프로젝트를 잃어버린 10년 동안 날려버린 셈이 된 겁니다. 김대중 정부 때 북한을 자극한다고 중단한 거예요.”

-재처리 문제는 미국에서도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또 하나 이유라는 말도 맞습니다. 미국의 우려가 있었죠. 재처리를 하면 방사능 유출 같은 대형사고의 우려도 있지만 그보다 한국이 핵무기로 쓸 수 있을 것이라는 국제사회, 특히 미국이 우리에 대해 안심하지 못하기 때문에 허가를 안 해준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미국 문제는 방금 말한 대로 박관용 이사장과 김시중 전 장관이 미국의 핵 관련 고위관계자들과 수 차례 접촉하면서 거의 이해하는 단계까지 잘 진행되고 있었어요. 왜냐,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을 명백하고 선명하게 공개한다는 전제가 있는 거고, 거기에 우리나라의 원자력발전 운영기술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미국이 무사고에 대한 신뢰도는 높아졌단 말이죠.

우리가 어느 정도냐 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가동률이 높습니다. 95% 이상입니다. 원자력발전 선진국이라는 캐나다가 가동률이 50%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러니 한국에 와서 원자력 운영 기술을 배우고 싶어한다고. 그러니까 미국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한국 내부에서 북한을 자극한다고 검토 자체를 막아버렸으니 말이죠. 그래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와 다시 시동을 걸었잖아요? 미국과 우리의 원자력 협정 기한이 2012년까지인가 그런데, 그때 개정하려고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TF팀까지 만들었다고 하잖아요? 개정의 핵심이 재처리 문제예요.”

-김대중 정부 때 NDI는 구체적으로 재처리 문제를 제안했었습니까?

“대통령인수위 때부터 했지요. 이종찬 국정원장이 인수위원장이었나요? 이 프로젝트를 가지고 설명했어요. 국정원장이 되고서도 했고. 이것은 원래 정부에서 해야 하는 프로젝트다, 그래서 내가 통일부 차관 때부터 권영해 안기부장과 협의해 기본 틀을 만들었다, 총론적인 작업을 마쳤다, 그런데 정권이 넘어갔다, 이 사업은 정권이 넘어가도 국가적 차원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얘기했어요.

그랬더니 이종찬 국정원장이 정말 좋은 일이라고 했어요. 그랬는데 진행이 안 되고 나중에 보니 DJ의 일부 측근들이 재처리는 북한을 자극하기 때문에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완전히 금기사항으로 만들어 프로젝트를 죽였죠. 북한은 핵무기를 만드는 데 말이지. 그래서 우리는 북한이 정상적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국가인 이상 최악의 경우 어떻게 될 것이냐를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정부는 있을 필요가 없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추진을 안 한다면 일반 국민이라도 나서서 제대로 알리고 재추진해야겠다, 그래서 꾸준히 연구하고 필요한 국내외 인사들과 접촉해왔던 겁니다.”

실제로 박관용 이사장과 김시중 전 과기처 장관 등은 미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활발한 접촉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은 자국으로부터 우라늄 등 핵연료를 수입한 국가와 미국산 원자력 설비를 사용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사용후핵연료를 다른 목적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미국의 사전동의를 얻도록 원자력협정에 명시하고 있다.

때문에 박 이사장 팀은 일단 일본이 재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벤치마킹했다. 그 후 투명성을 보여주기 위해 해외에서 먼저 위탁 재처리한 다음 국내에서 재처리공장을 설립하면 된다는 데 착안해 방향을 그렇게 잡고 우선 클린턴 2기 행정부와 미 의회를 상대로 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위한 여론 조성에 나선 것이다.

그때 박 이사장 일행이 접촉한 인사들은 학계·의회·국방관계부처와 행정부는 물론 미 민주당 산하 연구소인 국가정책센터(CNP)의 주요 핵심까지 포함됐다. 그들은 비밀리에 만나지 않으면 재처리 문제를 상의할 수도 없는 입장에 있었지만 박 이사장 일행을 만나 긍정적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CNP는 1981년 창립한 민주당의 싱크탱크로, 클린턴 정부에 정책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사들로 구성돼 있고, CNP의 역대 회장은 모두 우리 귀에도 익은 전 국무장관 올브라이트, 머스키, 밴스, 전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 전 하원의장 토머스 폴리 등이었다. 현재 CNP 회장은 오바마 정부에서 CIA 국장 물망에 올랐던 팀 로머 전 하원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김석우 원장의 말을 빌리면 박 이사장은 클린턴 2기 행정부의 ‘대통령 취임 1,000일 계획’ 속에 한국의 사용후핵연료 해외 재처리사업이라는 프로젝트를 넣기로 하고, 행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지프 나이 교수까지 접촉했다고 귀띔했다. 조지프 나이 교수는 클린턴 1기 행정부에서 국가정보회의(NIC) 의장과 국방차관보를 지낸 인물이다.

“박 이사장께서 무엇보다 CNP의 주요 인사들을 접촉한 것에 무게를 두는 것은 CNP 산하에 원자력안전연구그룹(NSSG)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정말 원자력 문제에 관한 한 영향력이 막강합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스펜서 에너지부 장관, 샘 넌 상원군사위원장 등이 참여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된 이슈들이라면 전부 꺼내놓고 기술적·전략적 정책자문을 담당하고 있단 말이죠. 오바마 대통령도 상원의원 시절 CNP의 원자력안전연구그룹 멤버였잖아요? 물론 현재도 CNP는 오바마 정부의 핵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지요. 박 이사장의 활동은 대단했어요.”

국익 차원에서 더 이상의 내용은 공개하기 어려운 듯 김 원장은 말을 아끼며 당시 한국전력의 이종훈 사장도 많은 수고를 했다고만 덧붙였다.

글 이호 월간중앙 객원기자·작가 [leeho5233@hanmail.net]
사진 박상문 월간중앙 사진팀장 [moon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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