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 - 김석우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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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대통령 의전은 국가의 품격

핵 재처리 추진하던 한국 北 자극할까봐 DJ가 중단시켜 #수조 원 절약할 수 있는 ‘평화적 핵주권’… 지금은 논의조차 못해

김석우(63)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장은 의전수석 시절 에피소드를 묻자 웃음부터 터뜨렸다. 숱한 일이 있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정치적 행사나 권력암투 같은 것은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지지만, 대통령의 일정을 지근거리에서 관리하는 의전수석의 행동반경은 거의 가려져 왔다. 그런 점에서 김 원장의 의전수석 시절은 새롭게 소개되는 셈이고 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역대 대통령의 의전을 책임지는 사람은 목소리가 제일 큰 사람이거나 제일 조용한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의전의 권력화를 말하는 것이지요. 박정희 정부에서 벌어졌던 권력자의 스태프들, 말하자면 비서실장·경호실장·중앙정보부장 등이 대통령의 스케줄을 장악하고 싶어 결과적으로 권력암투를 벌인 것 아닙니까? 대통령과 함께하는 스케줄을 누가 가장 자주, 많이 차지하느냐는 것이거든요?

거기에 의전수석은 피할 수 없이 중심에 있는 겁니다. 대통령의 일정과 면담자들을 선별하니까요. 그래서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제가 첫 의전수석(처음에는 스스로 1급 비서관 직급을 원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남들은 장관급으로 올려달라고 하는데 김석우는 희한한 사람이라고 했던 일화가 있다)을 했는데, 김영삼 대통령께서 당선자 시절이죠. 저를 불러 의전을 맡으라고 하실 때 처음에는 상당히 당황했어요. 저는 사실 전통적인 격식 같은 것, 틀에 박힌 의전 같은 것을 제일 싫어하거든요.

하하…. 제가 또 외무부 아주국장을 할 때도 그랬고, 정책으로 일해온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래야겠는데 의전이라니 깊이 걱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문민정부에 맞는 의전을 만들어내면 되겠다는 결론이 나온 거예요. ‘문민정부’의 철학이 뭡니까? 탈권위, 국민을 향한 정부 아닙니까?

그래서 의전의 권력화부터 철저히 차단했어요. 그러면서 권위의 그림자를 최대한 지우고 대통령의 일하는 모습이 국민에게 가장 잘 보이도록, 국민이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가장 정확히, 가장 진실되게 볼 수 있도록 의전의 실무적 역량을 강화했던 겁니다.”

-그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전 정권의 의전과 비교할 수 있는 예를 살펴볼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세종문화회관에서 행사를 한다면 맨 앞 경호실장차에 경호실장과 제가 타고, 다음에 대통령차가 뒤따르고, 그 다음에 수행원 차량이 뒤따르고, 맨 뒤에 카메라 기자들이 탄 밴이 옵니다.

그러다 보니 세종문화회관 입구에 도착하면 카메라 기자들은 저쪽 뒤에서부터 막 달려요. 100m 달리기 하듯 뛰어와도 대통령을 찍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예요.

거의 입장 후 행사하는 모습만 찍고요. 행사장에 도착하는 순간 대통령께서 뜻밖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거나 중요한 액션이 있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진을 찍지 못해 역사적 증거가 없게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경호 룰을 바꿔야 한다고 대통령께 건의했습니다. 출발은 처음처럼 하더라도 목표지점 도착하기 수분 전 사진기자들이 탄 밴은 대통령차를 앞질러 먼저 도착할 수 있게 말이죠. 그랬더니 대통령께서도 제 말이 맞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때부터 기자단이 앞질러 도착합니다. 과거 사진과 문민정부 때 사진을 비교해 보세요.

대통령을 밀착경호하는 사람 외에 공개된 행사장에서 경호원들이 삼엄한 눈빛을 보여주는 사진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대통령 행사는 국민을 위하는 일인데 국민한테 보이는 사진에 경호원들이 왜 삼엄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까? 최대한 부드럽게, 드러나지 않게 경호하도록 요청했지요.”

-탈권위를 의전에서부터 보여준 것이군요. 클린턴 대통령이 왔을 때 에피소드도 그런 경우였습니까?

“바로 그겁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1993년 6월 한국에 도착했어요. 그래서 정상회담을 하러 청와대 현관 정문에 클린턴 1호 리무진이 도착했는데 미국 경호책임자가 차 문을 안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 경호원이 못하게 돼 있어요. 클린턴 대통령이 차 안에 앉아서 2~3분을 그냥 기다리더라고요.

나는 즉각 알았지요. 그런데 우리 측은 무슨 불경스러운 일이라도 발생한 줄 알고 그 순간 상당히 당황했어요.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클린턴을 맞이해야 하니 내려오시는데…. 그게 순간이지만 비서실장도 엄청 당황하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손을 약간 들어 보이면서 걱정 말라고 사인을 보냈어요. 그때 사진기자들이 도착하고 찍을 준비가 되자 비로소 미국 경호책임자가 차문을 열어주는 겁니다. 미국도 국민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철저합디다.”

사실 지난 정권에서 의전방식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그로 인해 외교적 역량에 큰 손해를 봤다는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다. 노무현 정부의 고위직이었던 모 인사는 “국빈이 방문했을 때, 청와대보다 삼성미술관을 방문하는 것이 더 만족스러워 보였다”면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차라리 의전은 삼성에 외주를 주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며 의전 역량이 취약했음을 실토했다.

외교 현장에 오래 있었던 그는 “국제사회는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의전을 너무 소홀히 생각하는데, 대통령 의전은 국가의 품격이다. 의전상의 실수는 반드시 리스크가 돼 돌아온다”며 정치적 흠이자 국가적 망신이 될 수 있다면서 의전의 중요성을 거듭 지적했다. 그래서겠지만 김영삼 정부의 첫 의전수석이었던 김석우 전 차관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외무부 아주국장 시절 한·중 수교와 한·베트남 수교 교섭을 극비리에 진행할 때 중국도 베트남도 양국의 이익을 설파하는 그의 실리적·실무적 이론에 반하기도 했지만 공식발표 전까지 단 한마디도 새나가지 않도록 외곽을 다스릴 줄 아는 그의 능력을 평가해 ‘국가원수의 의전을 대신하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도 대통령의 치적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자 대통령당선인 시절 의전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건의했던 인수위의 판단을 새삼 떠올리며 지금도 장관 하마평이 있을 때마다 김 원장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기업인들 때문에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한테 혼나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이미 언론에서도 잘 알고 있다시피 정태수 씨가 로비를 잘하는 분 아녜요? 정부 일각에서 YS가 금융실명제 등으로 경제인들 기를 너무 죽여 투자를 안 한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그럴 때인데 경제파트에서 경제인들 기도 좀 살리고, 대통령 본뜻은 경제를 잘하자는 것이니 대통령이 경제인들 격려 좀 해주시도록 해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오찬행사를 하게 됐어요. 청와대 자주 와서 아시겠지만 정문 들어서면 오른편에 대통령께서 손님들과 행사를 치르는 곳이 있잖아요? 거기서 당시 정세영·이건희·구자경 이런 분들과 대통령이 함께 차를 마셨는데, 정태수 회장한테 혼났다는 것이 그날이에요, 하하….

대통령과 기념촬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 회장 머리가 대단하잖아요. 대통령이 어디쯤 서겠구나 하는 것을 미리 예상하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사진기자들이 들어오자 얼른 대통령 오른쪽에 딱 붙어 서서 사진을 찍었어요. 그런데 사진기자들이 얼굴을 찡그리면서 저한테 불만이에요.

방금 찍은 사진 내일 못 쓴다는 겁니다. 그때 벌써 정태수 회장 이미지가 썩 좋지 않았던 모양이야. 정 회장이 대통령 옆에 서면 전체 그림이 안 되니 빨리 정리해 달라는 거지요. 그래서 내가 대통령이 계시니까 정 회장 뒤로 가서 살그머니 양복을 당기며 나오시라고 했어요.

그 사이에 대통령을 가운데 두고 이건희 회장, 정세영 회장이 자리 잡은 모습으로 기념촬영을 했죠. 그랬더니 이제는 괜찮은 그림이 됐다면서 사진기자들이 만족해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정태수 회장 사진이 나갔으면 큰일날 뻔했잖아요. 한보사건으로 정태수 회장 시끄러울 때 YS께서 꼼짝없이 욕먹었을 것 아닙니까, 하하하….”

대통령과 사진 촬영 신경전

-그때는 정태수 회장이 가만있습디까?

“하하… 그때 혼났다니까요. 그 양반이 무지무지 화가 났어요. 내가 명찰을 달았으니 딱 노려보더니 당신 뭐 하는 사람이냐고 해요. 그때는 그 사람도 나를 잘 모르고, 나도 그 사람을 잘 모를 때이니 의전 하는 사람이라고 했죠. 그랬더니 내가 정태수 회장이라면서 막 씩씩거려요. 똑바로 하라면서, 하하하….”

-의전에도 공식이 있습니까?

“공식은 없지만 의전을 책임지는 사람은 원칙이 있어야죠. 최소한의 안배와 균형은 잡아야 합니다. 자리 배치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은 기본이고. 1815년 나폴레옹전쟁이 끝나고 비엔나에서 외교 할 때 외교에서의 의전이 처음 생겼습니다만, 중요한 건 유연성인데, 그동안 유연성이 거의 없었어요.

예를 들어 장애인을 위한 행사에 관료들을 대통령 옆에 앉히는 것은 맞지 않죠. 관료를 빼고 장애인 대표를 대통령 곁에 앉히는 겁니다. 제가 과학기술·교육·장애인… 이런 분야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썼는데, 그런 분야는 시간이 많이 걸려도 대통령께서 직접 행사에 참석해 격려하시도록 했죠. 그러자 부처마다 자기네 행사에도 대통령을 모시려고 하잖아요? 결국 마찰이 생기게 되지요. 그 판단을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김석우 원장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국제정세와 특히 ‘책임’이라는 단어가 사라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오늘의 북한과 향후 예상되는 미래 시나리오 같은 것은 상당히 중요하고 새로운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자료들이기도 했지만 다음 기회에 소개해야 할 것 같다.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사무실에는 국가발전을 위한 전략적 시뮬레이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글 이호 월간중앙 객원기자·작가 [leeho5233@hanmail.net]
사진 박상문 월간중앙 사진팀장 [moon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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