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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소설가 사강, 우즈벡 요청받고 92년부터 로비활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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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여름 내내 구름 쪽으로 코를 내밀고 당신을 태운 헬리콥터가 노르망디에 있는 저의 집으로 올까 기다렸지만 헛수고였죠. 안타깝게도…. " '슬픔이여 안녕' (54년 발표) 의 프랑스 여류작가 프랑수아즈 사강 (63) 이 93년 9월 7일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에게 보낸 편지의 첫 머리. 두 사람이 각별한 사이였음은 비밀이 아니다.

흥미로운 건 편지의 결구 (結句) . "저의 우정에 대한 믿음과 '마타 하리' 로서 이 마지막 임무에 대한 용서를 당신께 부탁드립니다. " 사강은 12일자 프랑스 르 몽드지 (紙) 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중앙아시아 석유사업의 '로비스트' 로서 친하게 지내던 미테랑을 움직였다고 고백하고, 미테랑에게 보냈던 편지 내용도 공개했다.

사강은 우즈베키스탄 정부로부터 거액의 커미션을 받는 조건으로 92년부터 2년간 여러차례 미테랑을 만나거나 편지를 보내 사업청탁을 했다고 밝혔다.

청탁 내용은 이 지역 유전개발에 프랑스 국영 석유회사인 엘프가 투자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것. 르 몽드가 공개한 앞의 편지는 미테랑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하는 길에 이웃에 있는 우즈베키스탄도 들러달라고 요청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미테랑은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은 '마타 하리' 로서가 아니라 '짓궂은 소녀' 로서 좋아하는 것" 이라고 사강에게 말하면서도 그녀의 청탁을 받아들여 엘프의 사업 참여를 유도, 결국 계약이 체결됐다.

그러나 지난 93년 총선에서 야당이던 우파가 총선에서 승리, 좌우 동거 (同居) 정부가 들어서면서 엘프가 우즈베키스탄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는 바람에 커미션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 사강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사강에게 접근, '마타 하리' 역을 주문했던 앙드레 겔피는 최근 '로리지날 (원문)' 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내고 추진과정에서 자기 주머니에서 이미 거액을 사강을 위해 썼거나 직접 줬다고 주장, 양측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겔피는 당시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고용한 로비스트로 활동했던 프랑스인. 그는 프랑스 외무부가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대통령을 믿지 않아 엘프의 유전개발 참여가 어려워지자 미테랑과 사강이 각별한 사이라는 사실에 착안하게 됐다.

앙드레는 친구인 전직 사진기자를 통해 사강을 만났으며 사강에게 미테랑을 설득해주도록 부탁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사강과 사진기자 두 사람에게 우정의 표시로 1천만프랑 (약 20억원) 을 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달 전부터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의 한 병원에 장기입원, 허리통증 치료를 받고 있는 사강은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겔피의 주장은 "엉터리 소설" 이라고 반박했다.

파리 = 배명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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