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부활하는 도시들] 3.도쿄도 오타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도쿄 (東京) 와 요코하마 (橫濱) 를 잇는 게이힌 (京濱) 철도가 한복판을 관통하는 도쿄 오타 (大田) 구. 전철 차창 밖으로 하네다 (羽田) 공항이 보이고, 주변에는 아담한 단독주택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겉보기엔 교통이 편리하고 바다와 강을 낀 주거기능 위주의 도시 같다.

"하네다 공항을 수시로 이.착륙하는 비행기에서 누군가 실수로 설계도를 지상에 떨어뜨린다면 우리는 다음날 아침까지 똑같은 물건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 "

오타구 산업진흥협회 사토 마사하루 (佐藤正治) 사무국장은 서울로 치면 김포공항이 있는 강서구쯤에 해당될 오타구의 막강한 기술력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겉보기엔 밀집 주택가이지만 절반 이상이 주택을 개조한 가내공장이다.

별칭은 '거리공장 (町工場.마치코바)'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가업단지다.

이곳은 실리콘 밸리와 분위기가 다르다.

하루에 수십개 기업이 일어서거나 망하고, 인터넷.전자.통신 관련 첨단기술 경쟁이 불꽃튀는 풍경과는 거리가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는 말에 걸맞게 소규모 가내공장들이 수십년에 걸쳐 갈고 닦은 한두개 품목의 기술력에 목숨을 거는 동네. 그러나 전기스위치든 진공펌프든 이곳에서 나오는 제품들은 거의 세계 제일의 성능을 자랑한다.

무려 6천8백여곳에 달하는 공장의 평균 종업원수는 9명. 전체 공장의 절반 가까이 (48%)가 종업원수 3명 이하의 가족기업이다.

특이한 것은 초등학교만 나온 최고경영자가 절반을 넘는다는 점. 바닥부터 시작, 수십년간 한 우물을 판 끝에 세계 정상에 올랐다는 방증이다.

이 곳의 상징은 선반의 바이트. 바이트 하나로 못만드는 물건이 없다.

다니케이 (谷啓) 제작소는 깡통따개 하나에만 매달린다.

7명이 일하지만 사장 부부와 장남을 제외하면 종업원은 고작 4명인 가족기업. 이 회사는 지난해 깡통따개 안쪽에 금속판을 한겹 덧대는 안전 깡통따개를 개발, 세계적 식품회사인 화인츠에 5억엔 (약 50억원) 을 받고 특허를 팔았다.

동시에 화인츠에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OEM) 방식으로 안전 깡통따개를 납품하기로 계약, 매년 6억엔의 안정적 매출을 올리고 있다.

손가락이 생명인 피아니스트 등이 깡통을 따다 손을 베는 바람에 해마다 30억엔 안팎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온 화인츠는 이 작은 기업 덕분에 손해배상 공포에서 벗어났다.

소니에 정밀부품을 공급하는 TKR 시노자와 히데아키 (篠澤秀晃) 사장은 원래 오타구를 가로지르는 다마 (多摩) 강의 뱃사공 출신. 다마강에 철교와 다리가 생기면서 생계수단을 잃자 전기스위치 생산에 손을 댔다.

지금은 정밀 전기스위치를 만드는 공장이 전국에 7개 (종업원 3백80명)가 되고 태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에 종업원 2천5백명의 해외공장도 거느리고 있다.시노자와 사장은 "우리 부품이 없으면 소니도 없다" 고 자부했다.

창업 45주년을 맞은 기타노 (北野) 정기는 종업원이 20명이다.

세계 최고 품질의 초 (超) 진공 기계를 주문생산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도쿄대.도쿄공업대 출신 일류 엔지니어들이 6개월씩 인턴으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첨단기업. 생산량의 80%는 각국의 내로라 하는 연구소에 납품한다.

"세계 제일의 기술이 첨단이지 꼭 컴퓨터나 인터넷 같은 신산업이라야 하는 건 아니다" 고 회사 간부들은 주장한다.

오타구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23년 간토 (關東) 대지진 이후. 평화롭던 강변 마을에 미쓰비시 (三菱) 중공업 등 군수공장이 생기면서 하청공장 형태로 거리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이곳에도 재앙을 안겼다.

일본 최대 병기창으로 '찍힌' 탓에 전쟁 말기에 미군으로부터 무려 19차례의 집중공습을 받아 마을 전체가 아예 숯검정이 됐다.

패전 후 오타구는 군수물자 제작으로 쌓은 노하우를 일반 기계제품 생산에 돌렸다.

저임금과 경제부흥 붐을 타고 번창하던 제조업체들은 그러나 70년대부터 본격화한 수도권 땅값 폭등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80년~90년대 초반에 걸친 거품경제의 와중에 기술력 없는 업체들은 문을 닫거나 뿔뿔이 지방으로 흩어졌다.

현재 살아남은 업체들은 거듭된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일당백의 차돌군단이다.

여기에 90년대부터 공장시설 없이 연구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옮겨오기 시작, 오타구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주거지와 붙어있어 24시간 연구가 가능한 데다 이웃한 공장에 설계도를 맡기면 철야작업으로 단기간 내 시제품을 만들어 납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쿄 중심가에서 30분 거리인 데다 가와사키 (川崎).요코하마의 길목이어서 고급인력도 쉽게 끌어모을 수 있다.

종업원 80명의 게토전자연구소도 공장없는 제조업체. 탈곡하지 않고도 벼 속의 수분이나 나무 속의 영양분을 검사할 수 있는 장비 등 10여가지 첨단장비를 개발, 주변 공장들에 생산을 맡겨 매년 36억엔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게토측은 연구.개발과 기술지도.검사.판매를 맡고 있다.

오타구 기업들의 고민은 창업주의 2세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화이트 칼라가 되기를 선호하는 탓에 기술을 대물림하기 어렵다는 점. 산업진흥협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공장의 25%만 "앞으로도 대를 이어 사업을 계속할 것" 이라고 답변했다.

종업원 3명 이하의 순수 기업 중에는 '창업자가 사망하면 공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다' 는 응답비율이 20%나 됐다.

아들 대신 친척이나 종업원에게 회사를 물려주겠다는 응답도 25%로 나타나 가족중심 기업 특유의 고민을 짐작하게 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