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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2군 한인3세 박봉수 "나고야서 부푼 꿈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박봉수 (朴峰秀)' 와 '아라이 다카히데' .그는 이 두가지 이름 가운데 오직 야구를 하기 위해 '아라이 다카히데' 를 택했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 2군 훈련장. 그 '무관심의 땅' 에서 그는 일본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방망이에 꿈과 도전을 싣고 있다.

박봉수 (22) 는 77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한국인 3세다. 아버지 박찬일 (60) 씨가 서울에 직장을 얻은 85년 조국 한국에 둥지를 틀었고 성동초등학교 5학년때 '말이 잘 안통하는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싶어서' 야구를 시작했다. 휘문중.휘문고를 거치며 고3때 청소년대표에 선발됐고 고려대에 진학해 프로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순조롭던 야구인생은 대학에서 멈췄다. 쟁쟁한 선배들 틈에서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프로선수는 고사하고 갖고 있던 감각마저 잃어버릴 판이었다.

98년 3월 아버지의 주선으로 일본 사회인 야구팀인 미쓰비시자동차 (나고야 소재)에 입단했다. 어차피 야구로 승부를 걸어야 할 인생이었기에 학업은 포기했다.

계약금 없이 월급만 21만엔 (약 2백10만원) .자취생활이었지만 다시 만난 그라운드는 천국이었다. 20경기 남짓 출전해 홈런 9개와 타율 0.345를 기록했다. 금방 소문이 나면서 프로팀 주니치 드래건스가 입단제의를 해왔다.

"선동열.이종범.이상훈의 삼총사가 활약하는 팀이어서 무조건 좋았어요. " 드래프트 7순위로 계약금 3천만엔, 연봉 6백만엔. 프로선수로서는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대선배들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꿈을 키울 수 있다는데 그는 만족했다.

"2년 뒤에는 1군에 있을 겁니다. 나고야돔 왼쪽 외야자리. 아직 한번도 밟지 못했지만 그 자리를 바라보며 삽니다. " 현해탄을 넘은 박봉수의 꿈이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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