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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세계화' 놓고 철학-정치 논쟁 가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 '세계화' 라는 표현은 국경통제소를 삼켜버리고 국가라는 건축물을 허물어버리는 사나운 물결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세계화 시장에서 '초국가적 자유주의' 는 개별 국민국가의 자율과 경제정책적 행동반경에 명백하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위르겐 하버마스)

"국민국가에 대한 중요성 약화가 곧장 국가 정책의 의미상실로 이해하는 태도는 반대합니다. 당신이 지적하는 세계화가 개별 정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거나 무력화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게르하르트 슈뢰더)

위의 논쟁을 당시 독일 언론들은 '철학과 정치 또는 정신과 권력의 대화' 라고 칭했다.

지난해 독일 총선의 열기가 달아오르던 당시 프랑크프르트 학파의 마르크스주의자 하버마스와 현 독일 수상 슈뢰더가 벌였던 '세계화와 민주주의' 에 관한 논쟁이다.

우리가 주시해야 할 제3의 길로써 '독일모델' 을 다각도로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슈뢰더의 '아직도 시간은 있다' (김누리 옮김.생각의 나무.8천8백원)가 출간돼 화제다.

이 논쟁에서 슈뢰더와 하버마스는 오늘의 세계를 규정짓는 '경제의 세계화' 에 대한 의견을 유감없이 피력하고 있다.

"빌 클린턴이나 토니 블레어는 파산 처분을 받은 기업을 어떻게든 다시 살려내려는 유능한 매니저로 자처하면서 이제 변할 때가 됐다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구호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는 이른바 세계시장체제라는 이름으로 개별국가의 정당한 관점, 개인의 민주적 의식을 무력화시키는 작태들입니다" 라고 서구 정치의 전망부재와 무기력을 질타하는 하버마스.

"개인은 사회로부터 받을 뿐 아니라 사회에 대해 주어야 합니다. 모두가 밀접한 공동체의식을 지녀야합니다. 그래야 비사회적이고 비연대적인 엄혹한 팔꿈치사회 (경쟁사회)에서 벗어나 사회의 개인화와 파편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라며 참여민주주의형 사회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슈뢰더. 현재 유럽에서는 슈뢰더를 비롯 영국의 토니 블레어, 프랑스의 리오넬 죠스팽 등 이른바 중도좌파 '제3의 길' 의 기수들이 부각하면서 다른 바야흐로 '사회적 시장주의 ' '사회민주주의' 로 그 줄기가 잡혀가고 있다.

고려대 강수돌 (경영학) 교수는 "유럽을 이끄는 이들 세 지도자는 모두 중도좌파의 큰 범주에 들어가지만 각각의 노선에 차이를 보인다.

조스팽은 시장경제의 논리를 수용하지만 실업.복지 등에 국가의 개입을 강조해 셋 중 가장 좌파적이며 반면 블레어는 시장경제와 개인의 영역에 비중을 둬 가장 우파적인 인물. 슈뢰더는 그 중간에 있다" 고 분석한다.

또 강교수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미국식의 시장만능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는 동시에 자본주의 내에서 자본주의 결점을 보완하려는 한계성도 함께 지닌다" 고 덧붙인다.

하버마스와 슈뢰더의 논쟁외에 '아직도…' 에는 저자가 사회학자 울리히 벡, 전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그리고 노조운동가.실업여성 등 다양한 계층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석학과 정치가의 논쟁 뿐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한 슈뢰더의 정치철학을 폭넓게 읽을 수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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