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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유행어에 담긴 시대의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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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최근 ‘개그콘서트’의 최고 인기 코너로 떠오른 ‘분장실의 강 선생님’의 한 장면. 10주년을 기념해 탤런트 강부자(中)씨와 개그우먼 김미화(左)씨가 우정 출연했다. 10주년 특집은 6일 밤 9시5분에 방송된다. [KBS 제공]


세상과 내밀하게 소통할 때 제대로 된 개그가 터진다. 그러나 당대의 가장 예민한 언어일 개그는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다. 잘 짜인 개그도 몇 주를 버티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개그’ 하나로 꼬박 10년을 밀어붙인 KBS-2TV ‘개그콘서트(개콘)’가 돋보이는 건 그래서다. 1999년 9월 국내 최초로 공개 코미디를 선보였던 ‘개콘’이 6일로 방송 10주년을 맞는다.

‘개콘’이란 이름은 지난 10년간 몹시도 출렁였던 우리 시대상과 맞먹는다. 변화를 거듭하는 우리 사회를 비틀고 희화화시킨 무수한 ‘유행어’를 내놓았다. 한국 사회의 표정을 정확히 잡아챈 ‘개콘표 유행어’는 곧 당대의 유머 코드가 됐다. 10년간 평균 시청률이 19%에 이를 정도로 인기도 끌었다.

연출 김석현 PD는 “그 시대에 맞는 정확한 유머 코드를 집어낸 게 ‘개콘’의 성공 비결”이라고 자평했다. 해서 지난 10년간 ‘개콘’이 선보인 유행어를 돌아봤다. ‘개콘표 유행어’에선 21세기 초입 한국인의 웃음 코드가 그대로 묻어난다.

#“정부는 ~ 왜 그런지 아나?”

‘봉숭아 학당’은 ‘개콘’의 유행어 공작소다. 이 코너는 10년째 방송을 이어오면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소위 ‘엣지 있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보고다. 초창기엔 유독 ‘정부’ 등 정치권을 비꼬는 유행어가 많았다.

2000년대 초반 맹구 역할로 출연한 개그맨 심현섭은 “정부는 XX가 왜 그런지 아나? XX가 아니면 이상하잖아”란 말을 유행시켰다. 운동권 학생으로 출연한 개그맨 박성호도 “선생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구국의 강철대오”란 말로 은근히 정부를 비꼬는 듯한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개그맨 김상태는 ‘노 통장’이란 캐릭터에 "맞습니다, 맞고요”란 말로 아예 직접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두 번 연속 정권 창출에 성공한 ‘민주 정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과 실망감이 교차하던 시절이었다.

#“그까이꺼 뭐 대~충”

부동산값 폭등과 실업 대란 등 본격적인 경제 추락이 이어지던 시대엔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거나 열패감을 나타내는 듯한 유행어가 주도했다. ‘봉숭아학당’에서 경비원으로 나온 개그맨 장동민의 “그까이꺼 뭐 대~충”이 대표적이다. 대충 살기엔 지나치게 각박하고 치열해진 한국 사회를 대놓고 조롱하는 말이다. 이 유행어는 최근 KBS 방송문화연구소가 성인 남녀 9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개콘 10주년 최고의 유행어’로 꼽히기도 했다.

숨통 조여오는 사회를 견디고 있는 일반의 감정을 직접 내지른 유행어도 인기를 끌었다. 개그맨 신봉선은 찢어질 듯한 소프라노 톤의 목소리로 “짜증 지대로다”를 외쳤다. 날이 갈수록 살림살이가 빠듯해지는 이 땅의 장삼이사 가운데 이 말을 따라 하지 않은 이가 있을까.

# “똑바로 해 이것들아~”

최근 ‘개콘’의 유행어를 주도하는 코너는 ‘분장실의 강선생님’이다. 이 코너는 포맷 자체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보다 보면 연공에 따른 엄격한 서열 구조, 그 서열에 굴복하며 살아가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는 너와 내가 보인다. 여자 개그맨들의 과도한 분장은 그 자체로 꽉 막힌 사회에 대한 ‘항거’인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개그우먼 안영미가 후배를 향해 다그치듯 말하는 “똑바로 해 이것들아~”는 어찌 보면 우리 사회를 향한 경고 메시지로 보인다.

최근엔 “우쥬플리즈(Would you please) 닥쳐줄래?(송준근)”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황현희)” “한방에 훅 간다(강유미)” 등과 같이 대상에 대한 경고성 유행어가 인기를 끈다.

말은 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이니 유행어를 탓할 순 없겠다. 다만 ‘개콘’ 10년 동안 항거와 허무와 경고의 유행어가 주로 나왔다는 건 그간 우리 사회의 표정이 긍정보다 부정에 가까웠단 뜻일 테다. ‘개콘’ 10주년을 거듭 축하하면서도 “이거 왠지 씁쓸한(김준호)” 기분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정강현 기자

개그콘서트가 낳은 유행어들

▶ “영국의 권위 있는 귀족, 루이 윌리암스 세바스찬 3세예요. 나가있어!” - ‘봉숭아학당’ 세바스찬 (임혁필)

▶ “헤헤헤,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 적어도 내 얼굴 정도는 돼야지” - ‘봉숭아학당’ 옥동자(정종철)

▶ “빠져봅시다. 이게 뭐니 이게~” - ‘깜빡 홈쇼핑’ 안어벙(안상태)

▶“내 아를 낳아도!” - ‘생활사투리’(김시덕)

▶“일구야~ 안되겠니?” - ‘현대생활백수’(고혜성)

▶“분위기 다운되면 다시 돌아온다!” - ‘우격다짐’(이정수)

▶“조사하면 다 나와” - ‘범죄의 재구성’-(황현희)

▶“아니죠~ 맞습니다!” - ‘까다로운 변선생’(변기수)

▶ “맨손으로 북경오리를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먹으며” - ‘제3세계’ 육봉달(박휘순)

▶“나안~할 뿐이고” - ‘봉숭아학당’ 안상태 기자(안상태)

▶“하지마” - ‘집으로’ 바보 빡구 (윤성호)

▶“~하는 센스! “-‘봉숭아학당’ 복학생(유세윤)

▶“니들이 고생이 많다”-‘분장실의 강선생님’(강유미)

▶“어쩔 수 없어. 세상의 이치니까”-‘분장실의 강선생님’(안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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