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토마토.감…. 작가가 의도적으로 어둡게 택한 검은색과 회색의 배경 속에 자리잡은 알록달록한 과일. 과육 (果肉).과즙이라는 시각과 미각의 이미지가 연이어 떠오르는 묘사다.
'하이퍼 리얼리즘' 이라는 경향이 그렇듯, 극히 사실적이다.
8~21일 금호미술관 (02 - 720 - 5114)에서 초대전을 갖는 화가 한운성 (53) 씨의 '과일 채집' 연작은 우선 그런 표정으로 다가선다.
작가는 70년대 콜라캔은 물론 희소가치가 없는 받침목과 신호등.매듭 등 범속한 일상의 소재를 미니멀하면서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려왔다.
"물체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내 주된 작업" 이라는 한씨는 "클로즈업된 물체를 통해 삶이 갖는 단면을 말하고자 한다" 고 설명한다.
'과일채집' 은 97년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짙게 그림자를 드리운 과일들은 그의 말대로라면 "세기말 마지막을 향해 불타오르는 생명체의 모습" 이다.
한운성 하면 판화를 떠올리지만 금호미술관 1~3층을 모두 쓰는 이번 전시에는 유화로만 30여 점이 걸렸다.
그러나 '연못' 이나 'DMZ' 연작처럼 실크스크린을 즐겨 하는 작가의 경향을 반영한 판화적 냄새를 물씬 풍기는 작품들도 다수다.
기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