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한사전' 편찬 선문대 박재연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조선시대 중국어의 쓰임새와 우리말로의 번역형태를 연구하는 것은 곧 우리 전통문화의 원류를 밝히기 위한 기초 작업이 될 것입니다. "

지난 10년 동안 조선시대에 쓰였던 중국어 사전 편찬작업에 매달려왔던 천안 선문대 중국어과 박재연 (朴在淵.45) 교수는 우리 문학이 정착되기 훨씬 전부터 옛 사람들에게 읽혔던 중국문학에 대한 연구가 한국문학 상상력의 원류를 꿰뚫어보기 위한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우리에게 없는 한자 글자꼴 처리만 끝내면 곧 출간될 '조선시대 중한사전' (태학사 출간 예정) 은 당시 인구에 회자했던 중국소설과 한글 번역본의 모든 용례를 집대성한 명실상부한 '조선시대 말과 글 대사전' 이다.

2백자 원고지로 8만장에 육박하는 분량으로 6천쪽에 이르는 방대한 사전이다.

"워낙 방대하고도 단순노동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어서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PC사용이 일반화하기 이전이어서 '르모2' 로 처음에 작업했다가 나중에 한글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들이 나오면서 모든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하기도 했습니다. "

방대한 내용을 한꺼번에 컴퓨터로 처리하다 보니, 컴퓨터의 에러로 입력했던 자료를 모두 날려버리고 찢어버렸던 자료들을 조각조각 붙이는 일도 했다고 박씨는 지난 10년간의 작업을 털어놓는다.

조선시대의 모든 문헌과 당대 중국측 문헌의 어휘를 쓰임새별로 분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글 번역 소설의 용례만 묶어 부록으로 내려던 '낙선재 필사본 소설 옛말 사전' 은 이달 중 출간된다.

"우리 소설의 효시인 '금오신화' 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전등신화' 가 중국에는 없었어요. '전등신화' 는 우리 규장각에서 처음 발견된 겁니다. 중국문학 연구자들이 우리가 발견한 '전등신화' 를 기초로 중국문학사를 다시 쓰게 됐지요. "

조선시대에 쓰이던 모든 문헌을 꼼꼼히 뒤지던 박씨는 뜻밖에 규장각에서 중국문학사에서 잊혀졌던 단편소설집을 발견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지난 93년 발견한 명나라 때의 단편소설 40편을 한데 묶은 '형세언 (型世言)' 이 바로 그것. 박씨는 새로 발굴한 '형세언' 을 중국문학계에 보고, 중국측 연구자들로부터 중국문학사를 다시 쓸 정도로 큰 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조선시대의 중국어 문헌에 대한 연구는 중국학 분야에서 뿐 아니라, 국학 연구에 귀중한 기초작업이 됩니다. 사전출간 작업이 중국학과 국학간의 학문교류에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고규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