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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본’의 노무현식 정치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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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16일 총리로 취임하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의 외교안보 슬로건은 ‘대등한 미·일 관계’다. 표현만 달랐지 노무현의 ‘자주 외교’와 다를 게 없다. 하토야마는 지난달 27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고에서 미국을 통렬히 비판했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 때문에 인간의 존엄이 상실됐다는 극단적 표현까지 썼다. “반미 좀 하면 안 되나”라고 했던 노무현 정권 초기를 보는 듯하다. 1993년 호소카와 연립정권이 들어섰을 때였다. 일본이 미국에 거리를 두자 미 클린턴 정권은 가차 없이 통상압력을 가해 왔다. 이때 “무슨 소리!”라며 대항한 인물이 당시 연립여당의 막후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였다. 양국의 티격태격은 수년간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일본 경제가 장기침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한 원인이 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차기 정권의 막후 실력자도 오자와다.

미군 기지 이전 문제도 그렇다. 노무현은 ‘국가 자존심’을 내걸며 서울 용산과 의정부 등에 있던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을 밀어붙였다. 하토야마도 마찬가지다. 주일 미군 재편과 관련된 기존 합의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한다. 오자와는 한발 더 나아가 “(주일미군은) 제7함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거든다. 여기에 연립여당이 돼 잔뜩 고무된 진보 성향의 사민당, 민주당 내의 옛 사회당 출신 의원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개혁의 1차 타깃을 공무원으로 잡은 것도 똑같다. 노무현은 취임 직후 공직사회 철밥통을 깬다며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만들고 공직자부패수사처 도입을 추진했다. 일 민주당도 뿌리 깊은 관료 위주 정치 시스템을 당장 뜯어고치겠다며 기세가 등등하다. 진보적 ‘386’세력을 정권 중추로 삼은 노무현, 전체 소속 의원(308명)의 절반에 가까운 정치신인(143명)을 동력으로 삼는 하토야마 민주당도 닮은꼴이다.

한국 내에서는 하토야마의 ‘아시아 중시’ 정책 때문인지 일본 민주당 정권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이름이 같다며 덩달아 들떠 있는 정당도 있다. 그러나 일 민주당이 ‘주장’과 ‘현실’의 차를 적절하고 세련되게 메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초반에는 참신함에 들뜨지만 미숙함에 눈뜨는 순간 국민의 실망의 강도는 더욱 큰 법이다. 한국은 이미 그걸 겪었다. 하토야마 정권의 노무현식 정치실험의 성패가 주목되는 이유다.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