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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의 새화두 '세계화의 반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는 1일 이슬람권 8개 개발도상국 (D8) 정상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지난 97년 창설 당시 취지대로 이슬람 개도국의 우호협력 증진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회의는 벽두부터 '세계화' 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무분별한 세계화가 아시아 경제위기를 불렀고 자국의 어려운 경제사정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날 연설에 나선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통제받지 않는 세계화는 시장교란으로 직결된다" 고 주장했다.

한결같이 지금은 '세계화 반성' 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세계화 자체는 어쩔 수 없는 대세. 한국을 포함해 어느 나라도 큰 흐름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다만 역작용을 최소화해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를 지향하자는 지적인 것이다.

지난 1월 28일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WEF) 의 주제가 '책임있는 세계화' 였던 것도 같은 맥락. 각국에서 지적된 세계화의 역작용을 분야별로 짚어 본다.

◇ 경제 = 80년대 다국적기업의 주도로 이뤄진 경제의 세계화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 '전쟁' 을 초래했다.

당연히 약육강식의 정글논리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

국제금융시장의 개방은 경제세계화의 핵심이다.

미국이 최첨단에서 이를 이끌고 있다.

97년 7월 태국의 바트화에 대한 국제 단기성 투기자금 (헤지펀드) 의 공격은 급기야 아시아 경제위기를 몰고왔다.

이어 러시아.브라질 경제가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헝가리 등 동구와 터키경제가 악화되고 있어 유럽도 경제에 관한 한 안전지대가 아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금융의 세계화, 즉 투기자본의 아시아 금융시장 공격이 아시아 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 헤지펀드의 자국 외환시장 공격을 원천봉쇄해 버렸다.

홍콩도 곧 이 조치를 뒤따랐다.

유럽은 연초 유로 (EURO) 화 출범으로 미국 주도의 경제세계화에 제동을 걸었고 일본은 엔화의 국제기축통화화를 추진하며 달러경제에 대항하고 있는 실정. 시장개방.자유무역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물결은 곳곳에서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미국이 유럽과 바나나 분쟁을 계속하고 있고 일본은 자국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덤핑판정에 항의, 세계무역기구 (WTO)에 미국의 반덤핑법을 제소한 상태. 지난해 비슷한 이유로 각국이 WTO에 제소한 건수는 1백58건에 달한다.

지난달 10일 자메이카 몬테고베이에서 개막된 15개 개도국 (G15) 정상회담은 "개도국엔 자유무역을 요구하면서 선진국은 WTO제소나 보호무역으로 나오고 있다" 고 불만을 터뜨렸다.

◇ 사회.환경 = 중국은 지난해 3월 주룽지 (朱鎔基) 총리체제 출범후 국영기업의 개혁 등 대대적 경제 구조조정을 시행 중이다.

밀려드는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 이 과정에서 무려 1억4천만명이라는 실업자가 양산됐다.

때문에 전인구의 16%가 부 (富) 의 70%를 차지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실업자들의 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실업에 따른 시위가 지난해에만 수십건에 이르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지난 5월 시위가 폭동으로 번져 최소한 1백여명이 숨졌다.

인도네시아의 사회불만은 이슬람과 기독교간 종교분쟁으로도 비화했다.

암스테르담에 본부를 둔 다국적 연구소의 수전 조지 부소장은 그의 저서 '외채 부메랑' 에서 "제3세계의 외채부담은 아마존과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지역에 대한 남벌로 이어져 지구의 환경파괴를 부르고 있다" 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과다한 외채에 시달린 아시아.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는 달러를 벌기 위해 마약생산과 판매가 급증하고 있는 실정" 이라고 주장했다.

◇ 문화 = 미국과 유럽의 문화전쟁이 한창이다.

거대자본을 앞세운 미국영화는 유럽영화시장의 70%를 점유한 상태고 유럽 TV프로그램의 60%가 미국산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문화조차 세계화라는 자본의 힘 앞에 무너지고 있는 것. 사정이 다급해진 유럽은 지난해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의 다자간 투자협정 (MAI) 논의에서 미국문화 개방을 둘러싸고 협상했으나 결렬된 상태다.

그러나 미국은 문화도 경제와 마찬가지로 국경없는 세계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모든 종류의 문화개방을 유럽에 요구하고 있다.

일본 역시 미국에 편승, 유럽문화개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실정.

◇ 세계화 반성 =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1월 25일 멕시코시티에서 "세계화와 기술적 진보가 영혼없는 세계를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 역설했다.

이어 다보스 경제포럼은 '책임있는 세계화' 를 주제로 한 토론에서 "세계화는 인간적 가치를 포용하고 실천해야 한다" 며 "세계화에 밀려 사회적으로 배제당하는 피해인구에 대해 재취업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훈련이 제공돼야 한다" 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반성은 일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최근 "미국이 요구하는 개방된 시장경제로 인해 세계경제가 차례로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세계화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고 지적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도 "외환위기후 아시아 국가들은 더 싼 가격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하고 있어 미국이 세계화의 피해자가 되고 있는 형국" 이라며 반성을 촉구했다.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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