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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과의 전쟁’ … 심리훈련으로 ‘신궁’ 자존심 지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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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단 12발의 화살에 운명이 갈린다.

세계 최강을 자부하는 한국 양궁이 1일 울산에서 개막한 제45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확률과의 전쟁’에 나선다.

한국이 준비한 비장의 무기는 ‘심리 훈련’이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리커브 부문에 걸린 4개의 금메달(남녀 단체 및 개인전) 중 3개 이상을 거둬들이는 게 목표다. 비올림픽 종목인 컴파운드 부문(금메달 4개)에선 금메달 1개 정도를 바라보고 있다.

◆피 말리는 승부에서 살아남기=요즘 양궁은 실력만큼이나 배짱이 중요한 요소가 됐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양궁에서 처음 올림픽 라운드 방식(두 명이 겨뤄 한 명을 탈락시키는 방식)이 도입된 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종전 선수별 18발에서 12발씩으로 화살수가 줄어들었다.

화살 수가 적어질수록 하위 랭커가 상위 랭커를 잡을 확률이 높아진다. 베이징 올림픽 여자 개인전에서 한국 선수들을 차례로 꺾고 금메달을 따낸 장주안주안(중국)은 이번 대회 중국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윤병선 대한양궁협회 사무국장은 “사실 장주안주안의 객관적인 실력은 한국 고교생을 상대로도 쉽게 이기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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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이후 심리 훈련 도입=서거원 양궁협회 전무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실패한 것은 심리적인 문제가 가장 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심리 훈련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베이징에서 남녀 단체전을 석권했지만 개인전 금메달을 모두 놓쳤다. 선수들끼리 의지할 수 있는 단체전에선 좋은 성적을 거두고 개인전에서 무너진 이유는 심리적으로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양궁협회는 지난해 12월 심리치료 전문가 홍성택 박사를 영입했다. 종전까지 양궁대표팀의 심리치료를 맡았던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김병현 박사 외에도 전임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서 전무는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면서 전체 훈련의 30~35%는 심리 훈련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심리 훈련은 ‘비밀 훈련’=심리 훈련은 면담 형식으로 이뤄지며, 그 내용은 ‘특급 비밀’이다. 심리 훈련이 선수의 심리적인 약점을 찾아내 그것을 고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 박사는 “약점과 프라이버시가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선수들끼리도 면담 내용은 철저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선수들의 심리적 부담감은 생각보다 크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단체전에서 돌부처 같은 표정으로 마지막 한 발을 10점 과녁에 맞혀 역전 금메달을 따낸 박성현(전북도청)도 “사실 그때 죽는 줄 알았다”고 회상할 정도다. 이창환(두산중공업)은 지난해 올림픽 직전 “지도자들이 나를 가장 약하다고 생각한다.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심리 훈련은 실전 훈련에도 반영된다. 지도자들은 면담 내용을 기초로 각종 특별훈련을 기획했다. 선수들이 베이징 올림픽 때 발사 순간마다 나왔던 호루라기 소리에 위축됐다는 결과가 나오자 지난 6월 공수특전사 부대를 찾아가 화살 발사 순간 총을 쏘게 하는 특별훈련을 했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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