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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질책으로 끝낼 일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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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국민연금파동을 비롯해 정책혼선 또는 일방적 정책강행 등의 문제점이 잇따라 터지는 것은 심상히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관계장관들을 강하게 질책하고 여당에서도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연금문제 외에도 혼란과 비판에 직면한 정책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자병용 (倂用) 정책이나 동강댐 건설강행방침 등이 그렇고, 통일부와 협의도 거치지 않은 미전향장기수의 북송방침도 그런 예다.

한일어업협정 실무협상후 어민대책에 쩔쩔매고 있는 것도 제대로 된 행정이라고는 볼 수 없다.

실업자는 날로 늘고 정국은 불안하고 경제여건은 낙관하기 어려운 이런 난국에 정부가 이처럼 난조 (亂調) 를 보인다는 것은 보통문제가 아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시정할 일대 쇄신책이 나와야 한다.

정책혼선이나 행정난맥이 일어나는 원인을 살펴보면 어처구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내에서조차 충분한 토론이 없었다거나 여론수렴도 없이 정책을 강행한 경우도 있었고,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은 채 시행에 들어간 정책도 있었다.

이런 일은 한마디로 안이한 행정,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휘하 관료들을 장악하지 못하거나 정책의 부작용.문제점 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부 장관들의 능력문제도 있다고 본다.

우리는 과거정부와는 달리 국무회의에서 민주적 토론을 활성화하고 있다고 자랑해 온 현정부에서 어떻게 내부토론조차 안되고 있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런 여러가지 문제점이 불거진 이상 그냥 질책만 하고 넘길 게 아니라 이 기회에 정부운영의 방식을 재검토하고 정부의 일하는 태세를 쇄신하는 결단이 나와야 한다고 본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책임행정이 이뤄져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파동이 일고 혼란이 생기면 이미 그 책임자의 직무수행력이나 지도력에는 손상이 갔다고 봐야 하고 그런 책임자로서는 어려운 일을 계속 감당해낼 수가

없다.

장본인을 그냥 두고는 문제의 근본적 개선도 하기 어렵다.

지금껏 검찰파동이나 국민연금파동 같은 게 있었는데도 책임을 묻는 조치가 없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 앞에 지금보다 어려운 문제들이 첩첩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생각하면 정부의 태세쇄신은 시급한 요청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정부운영방식도 옆으로, 아래위로 좀 더 유기적인 팀워크가 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고위층의 단순한 의사표시를 그대로 정부방침으로 믿고 강행하는 일은 없었는지, 정책혼선을 초기에 체크.조정하는 총리와 청와대비서실의 기능은 제대로 발휘되는지 따져볼 일이다.

마침 취임1주년이란 계기도 있는만큼 결단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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