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금융노하우'수출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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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외환위기 발생후 다수의 국내기업.증권사.은행들이 외국인에게 팔렸다.

자산담보부증권 (ABS) 이다 뭐다 하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금융상품들도 등장했다.

그런데 이런 굵직한 딜 (거래) 은 예외없이 외국인이 주도했다.

제일은행을 매각하는데도, 현대와 LG가 반도체사업을 합치는데도 외국인이 개입했고 1조원이 넘는 기업구조조정기금의 운용은 3개 외국자산운용회사에 맡겼다.

처음 해보는 일이다 보니 수수료로 적잖은 달러를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위기를 벗어나는듯 하니 본전 생각이 난다.

턱없이 비싼 수업료를 냈으면 무언가 배웠어야 하고 배웠으면 그걸 밑천삼아 우리도 돈 벌 궁리를 해 볼 법하다.

마침 브라질이 지난해 우리가 겪은 불행한 과정을 뒤따르고 있다.

레알 (브라질 통화) 이 폭락했고 금리는 하늘로 치솟았다.

이 불똥이 또 어느 곳으로 튈지 가늠하기 힘든 상황인지라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지만 한편으로 우리에게 기회다 싶다.

지난 한 해 누가 와서 무슨 충고를 해줬는데 지나고 보니 어떤 것은 피가 되고 살이 된 반면 어떤 것은 현실을 모르는 엉터리였다는 생생한 경험은 우리만이 전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미국이 자랑하는 금융 노하우도 20년대 이후 겪은 몇차례 위기의 산물이다.

우리는 한 때 합판과 가발 그리고 셔츠.신발을 수출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컴퓨터칩이나 자동차.철강.배를 만들어 해외에 팔고 있지만 미래엔 우리의 은행이 중국에 부실자산처리 기법을 수출하고 우리의 로펌 (법률회사) 이 태국기업간 합병을 중개하게 될 것이다.

국민의 막대한 희생을 강요한 우리 금융서비스업이 이번 위기를 제대로만 극복한다면 앞으로 달러를 벌어들일 기회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은 갈수록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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