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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淸淨行을 위한 믿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종기 (李宗基) 변호사와 관련해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변호사.알선책.검사.판사 사이의 고리 관계를 문제삼는 듯했는데,징계를 당하는 이는 억울하다는 듯이 검찰 지도부의 정부 시녀화를 공격하고 나섰다.

검찰 총수도 또한 눈물을 닦으면서 징계를 당하는 후배들과 그 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걱정했다.

여기에 많은 평검사들이 징계당하는 이의 주장에 공감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관행화돼 온 전별금이나 검박한 술자리 등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부패를 추방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따라 그 관행을 문제삼은 것이 잘못된 것인지,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됐다.

요즘 시민단체.언론사.정부가 갖가지 이름을 걸고 부패추방 또는 사회 맑게 하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 국민의 행동양식이나 의식구조를 바르고 깨끗한 쪽으로 개혁해나가서 보다 좋은 나라를 만들자는 시도쯤으로 짐작된다.

그 명분과 목표는 지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런 물음이 튀어나온다.

곧이곧대로 질서 지키며 맑게 살고도 출세하고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고도 권세가나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청정 (淸淨) 주의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

너 나를 가릴 것 없이 부패와 직간접으로 연루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한데 말이다.

작은 출세.작은 인물을 만드는 데는 눈치 빠르고 눈앞의 현실과 쉽게 타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큰 출세.큰 인물.지도자의 길은 다르다.

사람의 마음은 이중적이다.

자기는 검은 손과 악수하면서도 남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윗사람은 청정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도자의 길은 고독하다.

청정하다고 해서 출세가 보장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세상은 참으로 묘하다.

완전히 버리면 오히려 더 크게 얻는 불가사의한 도리가 있다.

청정하다 보면 사람.돈.권세가 따라붙게 된다.

큰 인물 치고 자기 나름대로의 청정 원칙을 가지지 않은 이는 없다.

한 텔레비전 방송사는 이종기 변호사와 관련한 특집 고발 프로에서 국민들이 공평하게 죄값을 받거나 재판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다른 날에는 수사 검사 가운데는 수사비가 없어서 곤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정을 전하기도 했다.

내 주변의 한 신도는 검사 아들을 부잣집 딸과 결혼하게 했다.

경제적으로 궁하면 처갓집 신세를 질지언정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란다.

일생을 바쳐 검사를 만든 부모는 그 아들로부터 여태껏 아무런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하며 살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만드는 법관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이는 극소수가 아닐까. 대다수의 법관들은 청정하지 않을까. 법관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없이는 부패 없는 나라를 세우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무용수들은 무대에서 무수히 회전하면서도 어지러움으로 쓰러지지 않는다.

나는 그 비결이 궁금했다.

한 전문가는 보이는 것을 다 보지 말고 오직 한 가지에만 시선을 집중하면 된다고 했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부패를 다 보려고 하면 어지럽다 못해 미쳐 버릴 것이다.

청정해야 한다는 것, 청정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에는 청정한 지도자나 법관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만 생각하고 믿어야 한다.

작은 의심은 또 다른 부패의 씨앗을 뿌리고, 큰 의심은 믿음을 만든다.

자신의 부패를 합리화하려는 의심은 작은 것이고, 나와 남이 다같이 청정해지기 위해서 마음의 뿌리로 파고 들어가는 의심은 큰 것이다.

자기 중심의 작은 의심은 부정적 냉소주의로 빠지게 되고, 큰 믿음은 긍정적 노력으로 발전된다.

화엄경은 "믿음이 도의 근원이고 모든 공덕의 어머니다" 라고 가르친다.

믿어야 공덕을 지을 수 있고 도를 닦을 수 있다는 말이다.

법화경도 "믿음에 의해서 도에 접근할 수 있다" 고 설한다.

사람의 본성에는 깨끗함과 더러움이 같이 들어 있지만, 더러움을 쉬고 깨끗함을 실천해야 마음이 평화롭고 만사가 잘 된다고 한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지만 팔십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가르침이다.

그래서 믿음이 요구된다.

부패를 추방하는 데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

국민 각자가 저 가르침과 법관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청정행을 하는 수밖

에.

釋之鳴 청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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