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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일상이 된 불법다운…책 내는 게 두렵다” 한숨 쉬는 만화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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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신작만화를 그리고 싶어도,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게 두렵다고 한다. 책이 나오는 순간 불법파일이 퍼져나가, 만화책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신인 만화가의 한탄이 아니다. 『불새의 늪』등 수작을 내온 한국 순정만화 대표작가 황미나씨의 말이다.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의 일상화로, 한국에서 만화란 ‘공짜로 보는 것’이 된지 오래. 그간 불법 다운로드에 시달려온 만화가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불법 유통의 장(場)이 되고 있는 웹하드 및 P2P 사이트를 대상으로 민·형사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영화 ‘해운대’ 동영상 유출에 대한 수사의뢰와 동일한 맥락이다.

한국만화가협회와 젊은작가모임은 31일 기자회견에서 “한국만화의 저작권을 지켜내고, 온·오프라인 수익을 되찾기 위해 만화가들이 단체소송을 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만화가들이 인터넷에 작품을 업로드한 네티즌을 대상으로 개별 소송을 제기한 적은 있지만, 단체 차원에서 움직이는 것은 처음이다. 협회 측은 일단 이달 말까지 소속작가 100여 명의 피해사례를 접수한다.

2000년대에 들어 한국 만화계는 지속적인 불황이었다. 인기만화가 탄생하고 수출도 늘었지만, 시장은 정체됐고 배고픈 작가들은 점점 늘어났다. 만화계는 주요 원인을 불법 다운로드에서 찾는다. 만화저작권보호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불법 다운로드로 만화계가 입은 손실은 약 1913억원. 피해 규모가 가장 컸던 2006년의 경우, 피해 콘텐트수는 114만 128개, 추정 손실액은 약 462억원이었다. 10권짜리 한 작품을 콘텐트 1개로 간주하고, 1개 콘텐트 당 피해액을 최소액인 3000원으로 산정한 것인 만큼, 실제 피해규모는 이의 몇 배에 달할 것이다.

실제 시장도 크게 위축됐다. 한때 수십 개에 달했던 만화잡지는 8개로 줄었고, 그나마도 대부분이 경영난에 시달리며 웹진 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만화를 그릴 무대가 사라지니 작가들은 작품 구상이나 취재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만화는 일본만화에 비해 읽을 만한 게 적다”는 팬들의 불평은 이런 악순환이 만들어낸 결과다.

올해는 한국만화가 100주년을 맞는 해다. 『요정핑크』 『빨간 자전거』 등으로 수십 년 간 독자를 웃기고 울려 온 김동화 작가는 이날 회견에서 호소했다. “지금처럼 나가면 한국만화는 붕괴된다. 한국만화가 100년을 더 살아남을 수 있을 지의 여부는, 독자에게 달렸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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