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부장판사 '개혁고언' 뒤숭숭한 법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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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대전 이종기 (李宗基) 변호사 수임비리 사건에 연루된 판사 5명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인 사법부에 뒤숭숭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법관 인사제도와 사법구조의 문제를 비판한 수원지법 문흥수 (文興洙) 부장판사의 글이 공개된데 이어 부산고법 판사들이 이번 사건 처리에 관한 의견을 대법원장에게 건의한 사실이 드러나자 사법부 수뇌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선 판사들은 文부장의 직설적인 자기고백에 대체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내부의 의사소통이 모두 공개될 경우 언로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대법원은 "이미 다 논의된 내용" 이라며 애써 큰 의미를 부여하기를 꺼렸다.

◇ 법관들 반응 = 대다수 소장판사들은 文부장의 글이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며 공감을 표시했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는 "인사와 사법시스템 전반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필요한 것이 사실" 이라고 말했다.

서울행정법원의 한 판사도 "표현이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대체로 공감한다" 며 "특히 평생 법관신분을 유지하지 못하고 변호사 개업을 고민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구조적 비판은 타당하다" 고 밝혔다.

그러나 대안도 없는 비판이라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소장판사와 부장 이상 판사들을 분리해 중견판사들이 개혁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지 말아달라" 고 주문한 뒤 "공감할 만한 부분도 있지만 현실을 오해하거나 지나친 표현을 쓴 곳이 많다" 고 말했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문민정부 이후 재임용되지 못한 법관이 두명밖에 없다" 고 소개하며 "재임용제도 때문에 소신을 펼 수 없다는 주장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 이라고 주장했다.

◇ 부산고법 판사들 의견서 = 부산고법의 한 관계자는 "부산고법 배석판사 18명이 최근 A4용지 세쪽 분량의 의견서를 작성, 고법원장을 통해 대법원장에게 전달하고 이 글을 일반인이 볼 수 없는 법원 통신망에 올렸다"고 밝혔다.

판사들은 이 글에서 "비록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지난날의 전별금을 문제삼아 법관들을 퇴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며 "추락한 사법부의 권위회복을 위해 대법원장이 국민에게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더 이상 문제삼지 않아야 한다" 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 문흥수 부장판사 = 법관전용 통신망에 띄운 글이 공개된 뒤 文부장은 "언젠가는 그 글을 발표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며 "앞으로 법원에서 전관예우라는 말이 사라지고 법관들이 소신껏 재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文부장의 글이 게재된 지난 4일 이후 법관 전용통신망에서 이 글의 조회건수가 1천여건에 달했으며 보도가 나간 6일 아침부터 찬성과 반대의견을 주장하는 글이 10여편 올라와 판사들의 상당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최현철 기자.부산 = 김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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