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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충처리인 리포트

‘스포츠 중계식’ 부동산값 보도 부작용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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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일러스트=강일구기자]

“연초 이후 부동산 값이 많이 올랐다고 보도됐는데, 내 아파트는 예전 그대로다. 어떻게 된 거냐.”

“신문에 전셋값이 뛴다는 기사가 나는 바람에 집주인이 전세계약을 연장해 주지 않는다. 부동산 기사를 되도록 신중하게 써달라.”

일부 국지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아파트 값이 오름세를 보이고 전셋값도 덩달아 들썩이는 가운데 부동산 문제에 관한 독자 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 요즘 부동산 기사가 그만큼 많이 읽히고 있다는 방증이다.

부동산 문제는 대표적인 민생현안이다. 부동산 값의 오르내림은 서민들을 울고 웃게 만든다. 단기간에 오른 부동산 값이 평생 모아도 벌기 힘든 돈에 해당될 때 사람들은 허탈에 빠진다. 집 한 칸을 살 만한 형편이 안 되는 세입자에겐 전셋값이 오른다는 뉴스만큼 허망한 소식도 없다. 집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 오름세가 작을 경우 상대적 박탈감 같은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된다.

부동산 시장은 심리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 한 줄 한 줄이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막강한 힘을 가진다. 부동산 기사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보다는 확대 재생산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파트 가격이 오른다고 기사를 쓰면 매물이 들어가 버려 가격상승을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OO아파트가 O억원 올랐다’거나 ‘매물이 사라졌다’ 등의 표현은 집을 사려는 수요자를 안달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중앙일보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되도록 자극적인 표현을 삼가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자세로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보도 원칙을 그대로 지킬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칠 때가 종종 있다.

부동산 가격은 단기적으로 상승할수록, 특정 지역에서 돌출적인 현상을 보일수록 뉴스가치가 높아지는 특징이 있다.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단기간 가격 상승을 언론이 일제히 크게 보도하는 것은 이 지역이 부동산 시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 앞으로 전체적인 가격 동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신문은 “강남 집값 상승 강북으로 옮겨 붙어” 식으로 부동산 시장 움직임을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보도하기도 한다. 이런 보도는 그 자체로 사실일 수 있다. 문제는 일부 지역의 특이 현상에 대한 보도가 던지는 파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마치 전국 부동산 시장이 크게 움직이는 것처럼 오해를 살 수 있고 부동산 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할 수 있다. 최근 수도권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값 상승과 관련, 상당수 신문이 “전셋값 질주, 전세대란 온다” “땅값 상승 투기 확산, 답이 안 보인다” 등의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몰아가기’식 보도를 했다.

사실 언론에서 보도하는 부동산 가격 동향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가격이라기보다 파는 쪽에서 부르는 호가인 경우가 태반이다. 부동산 시장은 주식시장처럼 조직화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시장이 아니다. 공식적인 매매가라는 게 존재할 수 없고 언론은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알려주는 호가에 의존해 시장상황을 보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부동산 기사가 시장 시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다. 이럴 때 부풀려지거나 과장된 시황보도는 자칫 가격에 거품을 끼게 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기사는 최대한 절제된 표현을 쓰고 지면배치도 신중하게 해야 하는 이유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 언론의 사회적 책임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서명수 고충처리인, 일러스트=강일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