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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공단 대출 생계자금 연체액 지급할 보험급여서 삭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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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환위기 때 국민연금관리공단이 한시적으로 실시했던 생계자금 대출사업에서 대출자 대부분이 돈을 제때 갚지 못해 보험급여를 삭감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12일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에게 제출한 '생계자금 대출사업 상계처리 현황'에 따르면 1998년 5~12월 생계자금 대출을 받은 23만7970명의 연금 가입자 가운데 지난 6월까지 21만2301명(89.2%)이 4개월 이상 계속 상환금을 갚지 못했다. 생계자금 대출 대상은 직장이 있어 국민연금에 가입했으나 98년 실직한 사람들이었다.

당시 이들은 납부한 적립보험료의 80% 한도(최고 1000만원)에서 연리 7.8%(변동금리로 1년 거치 3년 상환)의 조건으로 생계자금을 빌렸다.

공단 측은 대출자들이 4개월 이상 연속으로 돈을 갚지 못할 경우 그때마다 그들이 냈던 납입 보험료와 연체금을 상계 처리했다. 연체자들이 빌린 돈을 갚을 능력이나 의지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전체 대출금 7854억원 중 모두 6838억원(87.1%)이 상환 불가능한 연체금으로 판정돼 그만큼의 납입 보험료가 상계됐다.

이처럼 대출금 상환에 쓰인 보험료의 경우 그만큼은 연금 가입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대출금을 상계당한 가입자의 경우 노령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공단 측은 "대출금과 이자를 나중에라도 갚으면 연금 가입기간과 금액을 되살려 준다는 방침이었으나, 국민연금에 대한 인식 부족 등으로 처음부터 대출금을 갚지 않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노령연금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안상훈(사회복지학)교수는 "대출사업 자체가 사회보험의 원리와는 어긋나는 것"이라며 "아무리 IMF라는 특수 상황이었더라도 정부가 당장의 민원에 떼밀려 연금기금을 대출사업에 활용한 것은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의 연금수급권을 박탈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반론도 있다. 현재 소액 신용불량자에게 납입 보험료를 돌려줘 연체금을 갚게 하자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 전재희 의원은 "당장 생활이 어려운 극빈층에게 연금을 꼬박꼬박 내라는 것은 무리"라며 "일단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가능케 한 뒤 나중에 다시 연금에 가입시키는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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